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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분노 미끼’

입력 | 2025-12-02 23:19:00


옥스퍼드 사전이 2025년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Rage bait)’를 선정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분노나 짜증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속어인 ‘어그로 끌다’, ‘낚시질하다’와 뜻이 통한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건 2002년. 깜빡이를 켜고 추월하려는 차를 보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해서 ‘분노 미끼’를 던지는 운전자를 설명한 데서 유래했다.

▷올해 들어 ‘분노 미끼’ 사용 빈도는 3배가량 늘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작하려는 기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딥페이크 영상, 인공지능(AI) 챗봇, 가상 아이돌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정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술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 감정이 일으키는 행동까지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분노 미끼’는 이를 꿰뚫어 본 단어라는 것이다. 지난해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이었다. ‘분노 미끼’는 클릭을 유도하고, 알고리즘은 이런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끝없는 클릭으로 정신적 탈진을 겪으면 ‘뇌 썩음’ 상태가 된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달콤한 열매보다 숨은 호랑이를 빨리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충격’ ‘최악’ ‘박살’ 같은 ‘분노 미끼’를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클릭 버튼을 누르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분노는 행동을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분노를 느끼면 댓글을 달고, 연관 영상을 계속 클릭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SNS상 체류 시간 늘리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미끼가 없다. 분노가 정의감과 결합하면 후원금을 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정치 유튜브는 ‘분노 미끼’를 던지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유튜브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슈퍼챗(후원금) 수입 상위 30개 채널 가운데 10개 채널이 정치 관련 채널이었다. 상대 진영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분노를 땔감 삼아 돈을 벌었다. 유튜브와 현실 정치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기제가 바로 이것이다.

▷3만 명이 넘게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분노 미끼’와 함께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최종 후보 단어로는 ‘아우라 파밍(aura farming)’이 있다. ‘아우라 파밍’은 자신의 지위나 매력을 은근하게 전달하며 과시하는 행동이다. ‘SNS에 명품백 사진을 올리며 아우라 파밍을 했다’는 식으로 쓴다. 우리는 왜 ‘분노 미끼’를 덥석 물고 빠른 속도로 클릭하고, ‘아우라 파밍’에 몰두하고 있을까. 옥스퍼드 사전이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을 성찰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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