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조금도 못 참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생후 3개월 된 동생에게 수유 중이기 때문이다. 동생은 작게 태어난 데다 입이 짧아 젖을 한 번 물리기도 힘든 아이다. 엄마는 민수에게 타이르듯 부드럽게 “동생이 맘마 먹고 있으니 기다려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민수는 계속 “지금 당장 꺼내 달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다시 한 번 조금만 기다려주면 동생이 곧 다 먹을 것 같다고 사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탕 뭔가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민수는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다. 아이가 그러지 못한다면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는 방법은 부모들이 흔히 알고 있는 방식과 다르다. 무조건 “시끄러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야. 기다려!”라고 명령하는 것도 아니다. 또는 “미안해, 엄마가 지금 당장 해 줘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지금은 동생 수유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라며 사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광고 로드중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이가 “알겠어요. 지금 상황이 그렇군요. 제가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대답하지는 않는다. 이전까지 기다리는 훈련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아이라면 부모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아마 울고불고할 것이다. 그래도 그냥 두어야 한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대로 두어야 한다. 가끔 아이 얼굴을 보고 “기다려”라고 말하는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부모들은 떼쓰는 아이를 그냥 두지 못한다. “너 조용히 안 해?”, “시끄러워 죽겠네”, “계속 그러면 위층 할머니가 내려오신다”, “너 혼날 줄 알아! 엄마가 가기만 해 봐!” 같은 말로 아이를 계속 자극한다. 큰아이는 계속 난리를 치고 있고, 작은 아이를 수유해야 하는 상황을 부모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모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려면, 그 경험을 직접 하게 해야 한다. 아이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눈을 흘기거나 화내서는 안 된다. 지침을 주었다면 엄마는 담담하게 동생 수유를 끝까지 마치고 트림까지 시킨 다음, 동생을 내려놓고 “됐어, 이제 꺼내 줄게”라고 말하며 블록 상자를 꺼내 주면 된다.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칭찬해 준다. 이렇게 해야 아이는 ‘아, 엄마가 기다리라고 하면 그 시간이 될 때까지 내가 떼를 써 봐야 소용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배운다. 또 짧게라도 10분 정도 기다려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모가 기다리라고 해놓고 아이를 혼내거나 협박하는 등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면 아이는 같은 10분을 겪어도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없다. 부모가 아무런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도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위해 기다리고 참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광고 로드중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