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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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월가의 논쟁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AI 기술의 혁신성과 파급력을 생각하면 지금의 주가 수준은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AI 기업들의 가치가 과대 평가됐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AI 빅테크들의 순환 거래와 지분 투자를 놓고도 한쪽에서는 “AI가 붐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퍼포먼스 사기극”이라고 꼬집고, 다른 쪽에서는 “호황의 선순환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물론 AI의 미래가 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거품론은 혁신산업 안착해 가는 과정
이 논쟁에는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거품론이 형성됐다는 자체가 이전에 보지 못한 강력한 신산업이 출현했다는 반증이라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기술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선 애초에 이런 식의 버블 논쟁이 일어날 수가 없다. AI는 가상의 신기루나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산업 현장에 실재하는 기술이다. 그 기술의 가치가 앞으로 어느 정도 확대될지를 놓고 의견이 갈려 있을 뿐이다. 미국은 1990년대 정보기술(IT), 2000년대 모바일, 지금의 AI까지 글로벌 산업 혁신을 연이어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데도 성장률은 한국보다 몇 년째 더 높다. 가상화폐나 테마주 같은 투기성 자산이 아니라, 기술 혁신의 결과로 산업계에서 버블론이 나오는 것은 우리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두 번째는 논쟁의 순기능이다. 위기론이 팽배할 때는 실제 위기가 오지 않듯이, 버블 우려가 생기면 버블 붕괴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그 충격이 줄어든다. 이 논쟁은 빅테크들에 자기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사업과 투자에 내실을 다질 기회를 주고 있다. 신산업의 흥분감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안착하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과열됐던 투자 열기가 식으면 실력 없는 기업은 퇴출되고 더 경쟁력 있는 쪽에 자원이 흘러가는 금융 본연의 기능이 작동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먼지가 가라앉고 승자가 드러나면 사회가 그 발명품의 혜택을 누릴 것”이라며 “산업 버블은 긍정적인 버블”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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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저하’ 韓은 위험한 버블 조짐
비교적 건전한 버블을 겪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우려스러운 버블 조짐이 생기고 있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내수가 침체되는 와중에 역대 정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저금리와 확대 재정 같은 대증 요법에 의존해 왔다. 이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에 걸맞지 않게 시장 유동성을 키워 금융 부문의 버블을 야기했고, 그 결과는 가계부채와 한계기업의 폭증, 그리고 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 쇼크로 이어졌다. 정부는 대기업의 달러 매도를 유도하고,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를 억제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런 시장 개입이 과도해지면 우리 경제의 위험한 버블을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평소 혁신을 등한시하고 기업 활동을 옥죄어 왔던 것이 지금 두 나라의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유재동 산업1부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