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울산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미지의’를 창립한 이상국 대표의 말이다. 2023년 문을 연 이곳은 ‘어떤 공간이다’라고 딱 규정하기가 모호하다. 가장 확실한 기능은 카페이지만 곳곳에 다양한 분야의 작품이 전시돼 있고 강연과 공연을 할 수 있는 스테이지도 있다. 무엇보다 정원. 비정형 유리 건물을 둘러싼 자연의 규모가 9910㎡에 이른다. 150년 된 돌배나무와 산억새, 단풍과 연못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을 걷고 있으면 아름다운 블랙홀에 들어온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단차를 두고 동산처럼 조성한 곳도 많아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시야가 뚫리는 곳에 서면 저 멀리 고헌산 자락이 듬직하게 와닿는다. 가장 특별한 지점은 이 정원에 인간의 생애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에 걸쳐 10개의 정원을 조성했는데 청춘을 상징하는 곳에는 기세 좋은 폭포를 만들고 노년기를 빗댄 정원에는 몸피가 가녀린 자작나무를 심어 생을 마치고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동화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이 대표의 바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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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부동산 정책, 인공지능(AI)….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지만,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는 공간이 있다. 우리의 마음속 말이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늘 구석진 자리에 박혀 있는 그 미지의 것들이 잠시나마 양지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공간 이름도 ‘미지의’라 지었다.
이 대표는 스스로를 어릴 때부터 경쟁심이 없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처자식의 배를 주리게 할 수는 없으니 분양받아 온 돼지 11마리로 생업을 꾸려 자수성가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오랫동안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자연을 가졌다. 돈의 힘은 워낙 강력해서 저마다의 본성이나 기질까지 다 변질시키는데 평안에 이르는 길을 잊지 않고 끝내 그 자리로 돌아온 그의 결단이 근사해 보였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성공의 마지막 퍼즐을 완벽하게 맞춘 것 같았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