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시진핑과 통화뒤 日총리에 메시지 中-日 갈등서 사실상 중국 손 들어줘“
WSJ는 이날 미국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다카이치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베이징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가 미묘(subtle)했고, 다카이치 총리에게 발언을 철회(walk back)하라고 압박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이 같은 메시지를 우려스럽게 받아들였다고 WSJ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먼저, 일본에 그 다음으로 연락한 순서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관계를 위해 핵심적인 지정학적 문제에 대한 동맹의 입장을 억제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매튜 굿맨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보좌관은 WSJ에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 정상 모두와 대화하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그 순서는 일본 입장에서 놀랄 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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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5.10.31. 경주=AP/뉴시스
양국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통화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시 주석은 약 1시간의 통화에서 “대만의 중국 복귀는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며 “중국과 미국은 과거에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함께 맞섰고,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 성과를 공동으로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와도 약 25분간 통화했다. 미국 측 관계자는 WSJ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대만 관련 발언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또 다카이치 총리가 높은 지지율 속에서 발언을 철회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상황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옆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서 있다. 도쿄=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중국을 두둔한 배경으로는 ‘미국산 대두(大豆)의 중국 수출’ 문제가 꼽힌다. 대두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치적 지지기반인 농가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중국의 수입 거부로 큰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하는 상황에서 대만을 둘러싼 갈등으로 미-중 무역 합의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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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매우 좋으며, 이는 우리의 동맹국인 일본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라며 “중국과 잘 지내는 것은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본, 중국,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훌륭한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 세계는 평화롭다”며 “그 상태를 유지하자”고 했다.
일본 정부는 WSJ 보도에 대해 외교상 대화라 언급하기 어렵다며 논평을 자제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련 보도가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회담(통화)의 상세한 내용은 외교상 대화이므로 답변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일 정상이 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정세와 과제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의 미중 관계에 관해 설명했다. 양 정상은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 미일 간 긴밀한 연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NHK에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사이에 사태 진정화를 위해 협력해 가자는 뉘앙스의 이야기는 있었다”며 “(미국이) 자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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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일본 누리꾼들은 “국회의원 시절 발언과 총리로서 말하는 것은 다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여러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가 끝까지 발언을 철회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부 누리꾼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김혜린 기자 sinnala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