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지로 만든 책을 선보인 ‘적층:그날의 말꽃’ 전시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지는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로부터도 문화재 복원 용지로 공식 인증을 받았으며, 바티칸 박물관,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 이탈리아 국립중앙도서관 등 주요 기관에서 한지가 실제 복원작업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서도 ‘한지(韓紙)’가 예술과 디자인의 새로운 도구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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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의 한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지로 만든 책을 선보인 ‘적층:그날의 말꽃’ 전시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지로 만든 책을 선보인 ‘적층:그날의 말꽃’ 전시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독일 출판인 크리스티안 슐츠 씨는 “한지는 단순한 인쇄 재료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깃든 문화 매체”라며 “책을 넘어 예술적 오브제로 느껴졌다”고 말했습니요. 현장을 찾은 작가와 예술가들도 한지로 책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협업을 논의했는데요. 향후 출판·디자인·예술 분야로의 한지 활용 확장 가능성이 확인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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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5메종&오브제’ 전시에서 한지 공예품을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와 같은 호응은 프랑크푸르트에만 그치지 않았는데요. 지난 9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025 메종&오브제의 주제는 ‘웰컴 홈(Welcome Home)’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삶의 중심이 된 ‘집’을 새롭게 해석하는 전시였는데요. 특히 친환경성과 감성이 결합된 소재들이 주목받았습니다.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지는 한지는 그 대표적인 예였지요.
은은한 빛 투과성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전통적인 제작 과정이 결합된 한지는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한 소재’로 주목받았습니다. 관람객들은 “한지는 종이면서도, 천의 감각을 지닌 특별한 재료”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수요기획/한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천년의 기술, 유네스코 등재 향한 발걸음
우리의 전통 종이 한지의 뿌리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8세기경 신라의 종이인 계림지가 비단처럼 희고 매끄럽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도 한지는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주요 수출품목으로 선정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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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나무 껍질을 삶고 두드리고, 한장 한장 떠내는 한지 제작과정.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이러한 특징을 가진 한지는 최근 전통의 뿌리와 현대적 창의성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종이를 넘어 예술, 공예, 문화재 보존,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인테리어 브랜드에서는 전등갓, 벽지, 가구 표면 마감재로 한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지의 자연스러운 결이 현대의 미니멀리즘 미학과 만나는 것이죠.
이뿐 아니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복원 전문가들은 예술품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지의 원료인 국내산 닥나무는 섬유의 길이가 길고, 강도가 높아 내구성과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한지는 2026년 12월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가 성사된다면 한지는 한국의 전통 종이에서 나아가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관계자는 “한지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기술의 산물이자, 세대를 이어 전승된 공동체 문화”라며 “지속 가능한 인류 유산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등 유럽의 대표적인 박물관에서 문화재 복원 작업에 활용하고 있는 한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지는 이제 단순한 전통 공예품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감성을 품은 미래의 문화산업 소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손끝에서 이어온 전통이 기술과 만나 ‘과거의 종이’가 아니라, 미래를 써 내려갈 새로운 문화의 페이지가 되고 있는 셈이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