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분야 국제법령 전문가’ 김신우 변호사 인터뷰 “SMR 美완제품-선체 한국 주도 한미 양국서 동시에 건조하면 원자력협정-IAEA 규정 저촉 안돼 지금 시작해도 10년가량 걸려… 법적-기술적 기반 마련 시급”
국제 원자력 법령 분야 전문가인 김신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가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핵잠수함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건조 지역을 두고 협의가 장기화되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한미 분업을 통한 ‘병행 건조’를 강조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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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핵잠수함을 두고 서로 ‘우리 땅에서 건조’를 주장한다면 ‘양국 병행(동시) 건조’가 가장 빠른 해법일 수 있다. 그렇게 개발을 시작해도 초도함 완성까지 10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미가 14일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sheet·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핵잠 건조가 공식화됐다. 숙원 사업인 핵잠 건조가 첫발을 떼게 된 셈이지만 건조 장소와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들은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아 후속 협상을 통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김신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20일 진행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건조 지역을 두고 시간을 끈다면 핵잠 건조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병행 건조’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한양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코네티컷 로스쿨을 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 전문박사학위를 받은 원자력 관련 국제법령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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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핵잠 보유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전례 없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태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거나, 패권 다툼 중인 미중 관계가 변화하는 등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한국 핵잠 보유에 대한 시선은 바뀔 수 있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법적,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핵잠을 건조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뭔가.
“‘핵잠용 연료’만을 미국에서 공급받아 한국에서 추진용 소형모듈원전(SMR)부터 잠수함 본체까지 모두 건조하려고 하면 ‘한미 원자력 협정’(123협정)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 제14조’ 현행 적용 범위에 직접 부합하지 않을 수 있고, 이에 따른 별도의 협상 또는 부속 합의가 추가로 요구된다. 이 경우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이 평화적(비군사적) 목적에 한해 우라늄을 20% 이하로만 농축할 수 있도록 한 한미 간 협정이다. 한국은 원자력발전소 가동에 통상 5% 미만의 농축 우라늄을 활용한다. 또 ‘IAEA 제14조’는 군사 활동이 아닌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핵물질이나 시설에 대해 IAEA가 보장 조치(safeguard)를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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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에서 동시에 잠수함을 건조하되, 원자로 모듈(SMR)은 미국 주도로 제조한 완제품을 사용하고, 잠수함 선체와 비핵심 시스템은 한국 주도로 건조하는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이나 IAEA 제14조의 목적은 민수용 핵물질이나 기술이 군사용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한국에서 임의로 내부를 개봉할 수 없는 SMR 완제품을 수입해 활용하면 해당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핵잠용 추진체는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아닌 에너지부(DOE)와 해군이 관할하고 있는데, 최근 만난 DOE 자문변호사는 ‘군사용 완제품은 완전히 다른 법적 체계를 적용받는다’고 말했다. SMR 완제품은 이 같은 ‘군사용 완제품’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최우방국에 핵 추진 시스템 등을 ‘완제품’ 형태로 판매한 적은 있어도 핵연료 단독으로 판매한 전례는 확인된 바 없다.”
―SMR 완제품을 활용해도 한국이 군사용 핵물질을 보유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은 운영 권한을, 미국은 소유 및 처분 권한을 갖는 것이다. 한국은 SMR을 열어 핵연료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무결성 유지를 전제로 핵잠을 건조·운용하고, 핵연료를 교체해야 할 경우 핵잠이나 SMR을 미국으로 보내 연료를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사용한 핵연료의 저장이나 재처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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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핵잠 건조를 미국 조선업 부흥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미국 조선업 재건(MASGA) 프로젝트의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도 국내 건조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면 불필요하게 협상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상호 이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공동 건조인 것이다.”
―병행 건조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우선 중소형 핵잠을 건조하고, 미국에서는 버지니아급(7000∼1만 t급) 대형 핵잠을 건조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언급한 만큼, 핵잠 건조 부지 확보나 밀폐된(상공에서 관측이 불가능한) 지상 작업장,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지반 공사 등이 빠르게 진척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일정이 빠르게 추진되면 핵잠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 동맹에 잠수함을 공급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한국에서 미국 건조 핵잠의 선체 블록을 제작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한국 조선업 생태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버지니아급 핵잠의 유지보수 사업(MRO) 시장 참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술에 의존하면 우리 기술 개발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동시 건조는 한국이 핵잠 자체 건조 능력을 갖추기 위한 첫 단계다. 우선 공동 건조를 통해 빠르게 ‘핵잠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건조·운용·정비 노하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조선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면 노하우는 자연스레 쌓인다. 그다음으로 SMR 등 핵심 모듈 외 추진 시스템, 전력 변환, 냉각 시스템 등의 부분에서 한국의 참여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한다. 그러면서 원자로 등 ‘한국형 핵잠’ 설계 적용과 검증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은 IAEA 및 미국과의 핵 관련 법적 기반을 정비하고, 군과 방위산업계는 저농축우라늄 기반 한국형 핵잠을 건조하는 식으로 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기술력이라면 20∼30년 이내에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핵연료만 공급받아 핵잠을 자체 건조하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브라질이 1979년부터 핵잠 독자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건조를 시작하지 못했다. 현재 육상 원자로의 시제품을 건설하고 있다. 이 속도라면 2030년대 중반에야 첫 핵잠 건조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브라질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이 1994년으로 한국(1975년)보다 늦었기 때문에 초기 연구개발 때 국제적 감시가 느슨했고 이 정도 속도로 진행할 수 있었다.
오커스를 통해 핵잠을 도입하려는 호주 사례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호주는 핵잠 보유를 위해 ‘비폭발성 군사활동용 핵물질에 대해 IAEA의 안전조치를 일시 중단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IAEA 제14조 기반 별도 약정을 적용받기 위해 협상 중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 타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핵잠 관련 법령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규제 등을 담은 법령은 원자력안전법이 유일하다. 이 법은 사실상 원자력발전소 관련법으로 핵잠 연구개발이나 운용에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국제법상 문제 소지가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세부 내용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주변국과 조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신우 변호사(49) 약력-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핵물리학 박사
-미국 코네티컷 로스쿨 졸업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문박사
-한전KPS UAE원전수출사업실 근무
-원자력안전위원회 근무
-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