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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커닝’ 사태가 던진 질문… “대학은 어떤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가?”[맹성현의 AI시대 생존 가이드]

입력 | 2025-11-18 23:06:00

대학 평가 시스템의 시대착오
대학생 과제, 조사 등에 AI 널리 써… 시험에서만 차단, 책임 묻는다니
‘얼마나 외웠나’ 평가 유효기간 끝… 도구 활용 전제 ‘오픈 AI’ 평가해야
교육 현장선 새 방식 못 찾고 있어… ‘메타교사’ 통해 지원-재교육해야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최근 주요 대학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시험 부정행위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온라인 수업에서 수십 명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자수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대면 시험 도중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사용한 정황도 확인됐다. 대학들은 재시험과 징계로 대응했지만, 이를 단순히 학생의 일탈로만 규정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AI가 학생들의 일상적 학습 과정에 깊숙이 활용되는 시대다. 과거의 평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학생에게만 제약을 가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외면한 조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AI 활용을 억제하는 현재의 평가 방식이야말로 ‘디지털 네이티브’인 대학생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적 부정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자료: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인류는 도구를 통해 사고능력을 확장해왔다. 문자는 기억의 확장이었고, 인쇄술은 지식 복제 및 전파의 확장이었으며, 인터넷은 정보 처리 및 접근의 확장이었다. 오늘날의 생성형 AI는 이러한 도구의 계보를 잇는다. 비단 검색 기능에 그치지 않고 자료 분석과 요약, 아이디어 제안까지 지적 노동 전반을 보조하며 인간의 사고능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AI를 개인의 지식 시스템 일부로 통합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인지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빈약한 기억 용량을 보완하기 위해 집단이 축적한 정보, 즉 세상을 확장된 기억장치로 사용해 왔다. 세상을 바꾼 영웅들 또한 지식공동체를 적극 활용하며 위업을 이뤘다. AI는 이제 지식공동체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많은 대학생이 과제 작성, 자료 조사, 글 초안 작업에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험 시간만큼은 AI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발상은 시대 흐름과의 괴리를 보여줄 뿐이다. 이는 항해 중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나침반 사용을 금지하고 머릿속 지도로만 방향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결국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학생이 AI를 썼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교육에서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이다. AI가 몇 초 만에 정답을 내놓는 상황에서 지식 암기나 기계적 문제풀이 중심의 평가는 설득력을 잃었다.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정답 생산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윤리적 판단을 포함한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과정에서 AI를 비롯한 다양한 도구를 조합해 사용하는 것은 인류 진화의 긴 호흡에서 보면 당연한 발전 단계다.

대학의 평가는 이제 ‘오픈 북’ 시험처럼 ‘오픈 AI(Open-AI)’ 환경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AI 사용을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를 설계해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대학이 평가해야 할 역량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롬프트 설계와 문제 구조화 능력이다. 모호하고 다층적인 현실 문제를 AI가 분석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고, 다양한 관점과 가정을 반영해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능력은 이제 핵심 역량이 됐다.

둘째, AI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검토 능력이다. AI의 답변에는 오류와 편향, 근거 부족의 문제가 있다. 학생은 이를 평가하고 윤리·사회적 기준을 적용해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답을 산출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사고가 필요하다.

셋째, 인간적 가치의 통합 능력이다. 공감, 협력, 리더십, 책임성과 같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요소를 과제 결과물에 반영하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이런 평가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교육하는 이들의 인식과 역량 부족이다. 여전히 AI로 인한 사회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교수와 교사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를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로만 여기거나 변화의 필요성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 교육 도구로서 AI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교육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당장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막막해하는 것도 문제다.

기업과 기관들이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지금은 필요가 없더라도 경쟁에서 뒤처질까 우려하기도 한다.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교육계는 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이는 그저 AI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의 사회적 대전환을 읽고 교육의 목표와 방식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쓰나미가 몰려와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 GPS 사용 여부를 두고 고민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필요한 것은 가르치는 이들을 위한 체계적 재교육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할까. 답은 ‘메타(meta) 교사’다. 교육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메타 교사는 단순한 기술 강사가 아니다. AI 시대에 적합한 교수법과 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확산시키며 지속적으로 멘토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들이 체계적으로 양성돼 교수와 교사들을 AI 시대에 맞는 궤도에 올려놓을 때, 교육 시스템은 비로소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항로를 확보하게 된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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