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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 오르기 전부터 뇌 손상 시작”… 고혈압-인지저하 연결고리 발견

입력 | 2025-11-18 09:53:00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고혈압은 혈압이 눈에 띄게 상승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복잡한 뇌 손상 과정을 촉발한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코넬대학교 와일 코넬 의대(Weill Cornell Medicine) 연구진은 최근 전임상 연구에서 고혈압이 뇌혈관, 뉴런(신경세포), 백질을 조기에 손상하는 세포·분자 수준의 변화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왜 고혈압이 혈관성 인지장애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인지장애의 주요 위험 요인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혈압 상승 전부터 내피세포와 인터뉴런에 문제 발생
연구진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호르몬인 앤지오텐신Ⅱ를 생쥐에 투여해 고혈압을 유도한 후 3일과 42일째 각각 뇌세포 변화를 분석했다. 고혈압 유도 3일 후 혈압 상승은 없었다. 하지만 뇌혈관 내피세포, 신경세포 간 정보를 조정하는 인터뉴런,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미엘린을 만드는 희소돌기아교세포(oligodendrocyte)에서 유전자 발현이 급격히 바뀌는 조짐이 나타났다.

내피세포는 에너지 대사가 줄고 노화 표지가 증가하는 등 ‘조기 노화 현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외부 유해 물질의 유입을 차단하는 혈뇌장벽(BBB)이 약화할 위험도 커졌다.

신경세포에서 흥분성과 억제성을 균형 있게 조절하는 인터뉴런 역시 손상돼 신경회로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는 알츠하이머병에서 관찰되는 신호 장애와 유사한 양상이다.

또한 신경섬유를 감싸 정보 전달을 돕는 미엘린을 만드는 희소돌기아교세포의 유지와 복구 기능도 떨어지면서 백질 건강에 악영향이 감지됐다.

투여 42일 후에는 유전자 발현 변화가 더욱 광범위하게 나타났으며, 고혈압과 함께 인지 저하가 뚜렷해지고, 미엘린 형성과 신호전달 기능 손상뿐 아니라 신경세포 미토콘드리아 기능에도 장애가 발생했다.

왜 혈압을 낮춰도 인지 기능은 회복하지 않을까?
고혈압은 인지장애 위험을 1.2~1.5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용하는 많은 고혈압 약물은 혈압 강하에는 효과적이지만, 뇌 기능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혈압을 낮춰도 뇌 기능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은 오래된 의문이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고혈압이 혈관 압력을 높이기 전, 이미 혈관과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압력 외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혈압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이러한 초기 손상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로사탄, 초기 손상 일부 되돌려…새 치료제 개발 가능성
연구진은 임상에서 널리 사용하는 앤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혈압 강하제)인 로사탄(Losartan)을 생쥐에 투여한 결과, 내피세포와 인터뉴런의 초기 변화가 상당 부분 회복됐다고 밝혔다. 몇몇 인간 대상 연구에서도 ARB 계열 약물이 다른 혈압약보다 인지 건강에 더 유익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어, 신경 보호 효과를 가진 고혈압 약물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전망했다.

“고혈압, 뇌 조기 노화 요인”…예방이 우선

연구 책임자인 코스탄티노 이아데콜라 교수는 “고혈압이 뇌에 일으키는 변화 규모가 예상보다 컸고,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며 “뇌세포의 조기 노화를 이해하는 것이 인지 저하 예방 전략 개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혈압은 심장과 신장에 손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지만, 적절한 고혈압 치료로 예방할 수 있다”며 “고혈압 치료는 인지 기능과 무관하게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와일 코넬 의대에 따르면, 연구진은 현재 고혈압이 유도하는 소혈관의 조기 노화가 어떻게 인터뉴런과 희소돌기아교세포의 문제로 이어지는지 연구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고혈압이 뇌 인지 기능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예방하거나 되돌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뉴런(Neuron)에 지난 14일(현지 시각) 게재됐다.

관련 연구논문 주소: https://dx.doi.org/10.1016/j.neuron.2025.10.018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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