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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윤종]정권 바뀌면 반복되는 ‘수사지휘 데자뷔’

입력 | 2025-11-16 23:15:00

김윤종 사회부장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부당한 수사외압 통로가 돼 왔다.”

2018년 3월 5일,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는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중립성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반드시 서면으로 검찰총장을 지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와 관련해 수사팀에 직접 보고를 받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를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뒤 나온 권고안이었다.

7년이 지나 또다시 수사지휘 논란 끝에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4일 사퇴했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노 대행은 대검 비공개 면담 등에서 ‘법무부가 반대해 항소를 포기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신중히 검토하라고 의견을 줬을 뿐”이라며 수사지휘권 행사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마음껏 시켜, 난 짜장’, 수사지휘 악순환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이 7800억 원대 수익 중 상당액을 그대로 챙기게 됐다는 비판이 커진 상황에서 검찰은 ‘수사지휘를 받았다’, 법무부는 ‘지휘를 하지 않았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보니 7년 전 검찰개혁위 대책이 다시 회자될 정도다.

1949년 제정된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수사팀이 외압을 받지 않도록 총장‘만’ 공식 절차에 따라 지휘하란 취지다. 수사지휘권이 공식 발동된 사례는 네 차례 정도다. 2005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지휘권을 행사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중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사퇴했다.

2020년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가족 의혹 사건 등에 대해 두 차례 지휘권을 발동했다. 이듬해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했다. 모두 정치적 결정이란 비판이 뒤따랐다.

드러나지 않은 수사지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란 게 법조계 중론이다. 2011년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은 한화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서부지검에 비공식 지휘를 해 논란이 됐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도 ‘마음껏 시키게, 난 짜장’ 상황에 비유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상급자는 선택권을 준 듯 말하지만 가장 싼 메뉴(짜장면)로 기준을 주면 하급자는 볶음밥, 탕수육을 시키기 어렵다. ‘신중히 검토하라’는 항소 포기를 지시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지휘권 발동 요건 세밀히 규정해야

실제 의견 표명처럼 보이는 발언이 부당 지시로 판단돼 직권남용으로 처벌된 사례도 있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2001년 당시 울산지검장에게 자신과 친분이 있는 회사 관련 내사를 중단하도록 한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신 전 총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잘되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대법원은 “완곡하게 표현했더라도 상대는 거부할 수 없는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계기로 수사지휘권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권 오남용을 막기 위해 장관의 지휘권을 유지해야 한다면, 발동 조건을 보다 세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유럽평의회는 수사 지휘에서 특정 사건 불기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행사 시 수사기관에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서면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제도가 촘촘히 보완돼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법무부 장관은 명백한 위법 수사나 인권 보호 등 꼭 필요할 때만 지휘권을 투명하게 행사하고, 검찰 수장은 부당한 수사지휘라면 ‘알아서 기지’ 말고 수사 공정성을 지켜내야 한다. 내년 10월 검찰청은 폐지되고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 기소는 공소청이 담당하게 된다. 검찰이 사라져도 부적절한 수사지휘가 반복된다면 검찰개혁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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