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첫째, 중장년층은 암묵적 지식으로 일한다. 이는 매뉴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하우를 말한다. 실제 일하다 보면 같은 수치라도 현장마다 의미가 다르고, 같은 문제여도 해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차이를 중장년층은 자연스럽게 읽어낸다. 예를 들면 고객이 항의할 때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할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 낸다. 반면 AI는 이런 미묘한 상황까지 대응하기 어렵다. 현장을 통해서만 축적되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중장년층은 사회적 기술을 활용할 줄 안다. 직장이라는 조직도 결국 사람으로 이뤄진 곳이다. 사람은 규정된 틀보다는 서로 간 신뢰에 더욱 끌린다. 일례로 팀의 분위기를 읽고, 결정적인 순간에 적절한 한마디를 건네고,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가 있다면 그 팀은 확실히 다르다. 제아무리 AI가 발달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AI에 그런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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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오해해선 안 될 점이 있다. 중장년층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해서 모든 중장년층에게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AI와 더불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이는 앞으로도 AI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여전히 디지털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첨단기술은 복잡하고 본인과는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버린다. 이제껏 잘해왔으니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은 저만치 가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결국 AI 시대는 AI를 활용할 줄 아는 중장년층에게만 유리하다. 보고서의 결론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주어진 영역에서 성과가 드러날 때 중장년층의 경험은 비로소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를 따라가며 배우려는 이들과 배우지 않는 이들 간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요즘 중장년층들은 달라지고 있다. 주변을 보면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환경을 탓하며 멈추는 대신 가능성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최근 내가 수강한 AI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롬프트 실습 과정이었는데 신청자는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오픈한 지 세 시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강좌이고, 강의실은 늘 학구열로 뜨거웠다. 수강생들은 수업 중에는 집중력을 유지했고, 쉬는 시간에는 각자 연습하느라 바빴다. 강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배운 지식을 그 즉시 삶에 적용해 보려는 실행력도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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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똑똑한 퇴직자들은 무리수를 둬 미래를 덜컥 열지 않는다. 자신의 경력을 십분 살려 저마다의 길을 개척한다. 내가 만났던 전직 PD는 퇴직 후 유명 크리에이터가 됐다. 회사를 떠난 뒤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배워 좋아하는 콘텐츠를 매주 올리고 있다. 또 다른 지인은 대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직장에서의 홍보 경력에 빅데이터 분석을 더하자 강의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둘 다 가지고 있던 역량에 신기술을 더해 스스로를 재탄생시킨 사례였다.
AI 시대의 퇴직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절반의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경험이라는 자산이 그것이다. 이제는 그 자산을 갈고닦기만 하면 된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사람. 그런 이들에게 노후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