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들은 상처로 말한다/셰이팅 지음·강수민 김영화 옮김/276쪽·1만9000원·멀리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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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인 한 소년이 정신과 진료실을 찾았다. 동행한 엄마는 “아들이 툭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를 못 가겠다고 한다”고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다. 상담 내내 큰 반응이 없던 소년이 의사와 나눈 첫 대화는 소년이 갖고 다니던 책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 대해서였다. 성폭력 피해자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저자는 소설 발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어진 두 번째 대화에서 소년은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보였다. 그 일기는 펼치자마자 역한 냄새가 났다. 소년은 자주 팔에 상처를 냈고, 그 피로 일기를 써왔던 것. 그리고 그 일기엔, 1년 전 버스 안에서 겪은 성폭행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대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24명의 아이들을 통해 살펴본 ‘청소년 자해’에 대한 임상 르포다. 저자는 대만에 약 300명뿐인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중 한 명. 옹알이 단계의 영아부터 20대에 접어든 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겪은 심리적 고통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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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선 2020년 출간됐는데, 관련 문제를 아주 깊이 있게 다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이 무겁게 와닿는 건, 한국의 심각한 청소년 자해 문제 때문일 테다. 지난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학교에서 자살 시도 및 자해를 한 학생이 3만 명이 넘었다. 만약 어딘가에서 ‘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실은 ‘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이라는 이 책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 본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