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아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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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그러나 이들에게도 “우리 아들은 의사예요”라는 중산층 유대인의 깊은 염원이 있었다. 안정된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인 의사가 되는 것만이 아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진로였다. 아들은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바람대로 뉴욕대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의대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고, 2년 만에 학교를 떠나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다. 훗날 ‘기업 사냥꾼’으로서 “이기는 것과 돈 버는 것이 좋다”고 말한 아이컨 엔터프라이즈의 칼 아이컨 의장(1936∼)의 출발이다.
아이컨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타깃 삼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사들인 뒤 경영진에게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배당금 확대, 구조조정 등을 요구했다. 1980년대에는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이나 대주주가 없어 지분이 분산된 기업을 상대로 경영권 공세를 벌인 뒤 높은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거두는 그린메일(green mail) 수법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1985년 TWA(Trans World Airlines) 사건은 단기 이익 추구를 위해 기업을 해친 ‘악성 투기자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이컨은 TWA를 적대적으로 인수한 뒤 자금 회수를 위해 런던 노선과 항공기를 비롯한 쓸 만한 자산을 팔아치웠다. 막대한 채무를 안게 된 TWA는 결국 1992년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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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2006년 2월 KT&G 주주총회에서 한국인삼공사(현 KGC인삼공사)의 분리 상장, 유휴 부동산 매각,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며 경영진과 맞섰다. 8월 KT&G가 아이컨의 제안을 반영한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해 주가가 상승하자 아이컨은 12월 주식을 처분해 열 달 만에 1500억 원의 차익을 거두고 떠났다. ‘먹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아이컨의 활동으로 KT&G의 기업가치가 상승해 많은 주주들이 혜택을 본 것도 사실이다.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지 않는 기업들은 언제라도 아이컨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