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츠카국제미술관에서 떠올린 예술의 질문들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오츠카국제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도판 명화.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미술관
지난달 2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40분 후 일본 도쿠시마 공항에 내렸다. 렌터카로 곧장 오츠카국제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 3층부터 2층까지 전시가 4km 관람로로 이어지는 2만 9412㎡ 규모의 장대한 미술관이다. 가히 ‘걸어서 감상하는 세계 미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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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와 벽화를 도판 명화로 구현한 오츠카국제미술관.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원작 소장 기관들은 저작권과 색감, 촬영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계약을 맺고 시장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문화적 접근을 허용한다. 그 결과 오츠카 그룹의 고향인 일본의 시골에 있는 이 미술관에 지난해 57만 9000명이 다녀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전후의 모습을 도판 명화로 비교 전시했다.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복제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
발터 벤야민은 저서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본이 가진 ‘아우라’의 상실을 예견했다. 예술이 대량복제되면 진품의 유일무이한 역사성과 장소성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바로 그 경계의 지점에 서 있다. 원작의 향기와 장소성은 없지만, 아우라의 부재가 오히려 새로운 사유를 일으킨다. 복제된 이미지 속을 걷다 보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말로가 품었던 꿈을 이 미술관은 도판 기술로 현실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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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감상할 수도,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는 오츠카국제미술관의 ‘모나리자’ 도판 명화.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이 미술관을 만든 오츠카그룹은 기본적으로 기술기업이다. 그들의 복제 과정은 예술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도판 기술의 정밀함을 과시하는 산업적 프로젝트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질문이 던져진다. 기술적 완벽함이 예술적 진정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던져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외 정원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원작은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의 타원형 방에 전시돼 있지만 오츠카국제미술관은 이 작품의 도판을 야외 정원에 설치했다. 이 정원에서는 모네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푸른 수련을 10월 하순에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원작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감각의 확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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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카국제미술관 내 ‘카페 드 지베르니’의 정원. 10월 하순인데도 푸른 수련이 피어있었다. 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등 예술작품을 구현한 미술관 내 ‘카페 드 지베르니’의 디저트들.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 그린 ‘해바라기’ 7점의 도판 명화 전시 구역. 오츠카국제미술관 제공
1920년 오사카의 실업가인 야마모토 고야타 씨가 당시 2만 엔을 들여 구입해 일본으로 가져왔다가 1945년 소실된 고흐의 ‘해바라기’. 도쿄도 무샤코지 사네아쓰 기념관이 소장한 화집 사진을 도판 명화로 재현해 오츠카국제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관람을 마치고 뮤지엄숍에 들러 미술관 입장료보다 비싼 도판 명화 기념품을 세 개나 샀다. 소실된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이날 유독 마음에 들었던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이다. ‘에덴의 정원’의 경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런던 길드홀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을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의 자료를 이용해 도판으로 재현했다고 명확히 표기함으로써 복제의 윤리를 제도화했다. 복제가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기억의 기술로 변모한 것이다.
오츠크국제미술관의 도판 명화 ‘에덴의 정원’ 앞에서.
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