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세상 바꾼 오프라 윈프리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윈프리는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프로그램의 형식 자체를 바꿨고, 나아가 미디어 권력의 소유 방식까지 뒤집은 기업가였다. 첨단기술도, 투자자의 자본도, 거대한 공장도 없이 그는 오직 자신의 목소리와 진심으로 회사를 세웠다. 그가 세운 기업은 제품이 아닌 공감을 생산했고, 그 공감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가 됐다.
윈프리는 목소리로 세상을 바꾼 기업가였다. 그의 무기는 공감이었고, 자본은 진정성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흑인 소녀로 태어나 세계 미디어 산업의 정점에 선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되기까지 그의 서사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무엇으로 창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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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버지 버넌 윈프리와 함께 테네시로 이주한 그는 학업에 전념했다. 학교에서는 토론과 낭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테네시주립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19세에는 지역 방송국에서 최연소이자 최초의 흑인 여성 앵커로 일했다. 그러나 당시 방송계는 흑인 여성에게 냉정했다. ‘발음이 지나치게 남부스럽다’는 이유로 교체되기도 했다. 그 경험은 윈프리에게 한 가지 확신을 남겼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내 목소리를 재단받지 않겠다.”
뉴스가 아닌 ‘사람’을 전한 방송인
윈프리는 시카고 방송국의 낮 프로그램을 맡게 됐을 때 어떤 소식에든 냉철한 태도를 지켜야 하는 기존의 뉴스 진행 방식을 거부했다. 그는 인터뷰할 때 원고를 내려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태도로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진행한 방송은 1년 만에 지역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1985년 ‘오프라 윈프리 쇼(The Oprah Winfrey Show)’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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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윈프리는 진행자가 아닌 공감자가 됐다. 그의 프로그램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시청률이 아닌 신뢰였다.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보다 얼마나 진심인지부터 느낀다.” 이 말은 지금도 수많은 리더십 강연과 경영학 강의에서 인용된다.
방송인 넘어 콘텐츠 제국 CEO로
윈프리는 더 이상 타인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얼굴’로 머물길 거부했다. 1986년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딴 ‘하포 프로덕션(Harpo Productions)’을 세워 ‘오프라 윈프리 쇼’의 판권을 직접 가졌다. 이는 방송사 종속 구조를 뒤집은 당시로선 혁신적 결정이었다. 콘텐츠 노동자에서 콘텐츠 소유자로 그는 미디어 산업의 권력 지형을 바꿨다.
하포는 ‘닥터 필 컬러 퍼플(Dr. Phil, The Color Purple)’ 등 인기 방송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았다. 2000년에는 월간지 ‘O, 디 오프라 매거진’을 창간했다. 매달 윈프리의 얼굴을 표지에 내세운 이 잡지는 2020년까지 20년간 발행되며 여성 독자들의 ‘인생 교과서’로 불렸다. 2011년에는 케이블 채널 ‘OWN(Oprah Winfrey Network)’을 설립해 콘텐츠 사업자로 완전히 전환했다. OWN은 예능이나 드라마보다 인간의 성장, 관계, 회복을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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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성공을 이렇게 요약한다. “나는 성공을 쫓지 않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성공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설립한 ‘오프라 윈프리 재단’은 교육, 여성 리더십, 정신건강, 인종평등 분야에 수억 달러를 기부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세운 ‘소녀들을 위한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아카데미’는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소녀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에게 리더십이란 권력의 행사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일이다.
윈프리의 이야기는 기술 중심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인간을 편하게 하는 건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이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데이터가 아닌 인간의 감정이다.
영상 콘텐츠 분야에선 더 이상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의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콘텐츠 제공자가 될 수 있다. 그 덕분에 훨씬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한때 주목받지 못했던 소수의 취향과 개별적 경험도 중심 무대로 올라섰다. 동시에 많은 제작자들이 조회수와 알고리즘의 눈치를 보며 자극적인 주제와 단기 성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콘텐츠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윈프리가 보여준 ‘공감의 확장성’이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창작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한국에 필요한 콘텐츠 기업가
AI가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 산업은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기술에 더 의존해 인간을 대체하려는 산업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감정과 존엄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산업이다. 후자의 길에서 윈프리 같은 창업가들이 한국에서도 등장해야 한다. 기술이 아닌 인간성으로, 효율이 아닌 의미로 세상을 치유하는 기업들이 더 많이 태어나길 바란다.
한국의 콘텐츠는 이미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K드라마, K팝, K푸드를 넘어 우리는 K스토리와 K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기업가, 즉 콘텐츠로 세상을 바꾸는 창업가들이 나와야 한다. 윈프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미국의 TV 화면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다. 이는 한 방송인의 성공담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공감이 빚어낸 기업가정신의 서사시다. 그 서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알고리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진 않은가. 당신만이 발굴할 수 있는 인간의 감동을 좇고 있는가.”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