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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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상피암 1차 치료제로 나온 첫 신약요법(파드셉과 키트루다 병용요법)은 약값이 1000만 원에 달한다. 하루빨리 급여화해 달라.”
최근 청원24 홈페이지에 전이성 요로상피암 1차 치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약 병용요법의 급여화를 촉구하는 환자 글이다. 방광암, 요관암, 신우암 등을 일컫는 요로상피세포암은 고령층에서 86%를 차지하는 노인성 암이다. 10년 전에 비해 급증하는 암으로 2024년 현재 5만4582명이 진료를 받고 있다.
환자들이 이렇게 청원을 올리는 이유는 기존 치료제에 비해 신약 치료 효과가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기존 치료제인 백금 기반 항암화학요법군과 비교했을 때 전체 생존 기간 중앙값에서 2배 이상으로 개선됐고(15.9개월→33.8개월) 사망 위험도 49% 줄었다. 신약 병용요법은 오랜 기간 ‘신약 불모지’로 불려 온 전이성 요로상피암 1차 치료에서 30∼40년 만에 등장한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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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파드셉 1차 병용요법은 2024년 7월,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허가돼 의료계의 주목을 받았다. 혁신적인 새 치료법의 등장에 그간 항암화학요법에 의존하고 있던 전이성 요로상피암 환자들에게도 고무적인 생존 기간 연장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국내 도입의 주목받을 만큼 빠른 속도에도 환자들의 생존권은 또다시 ‘보험급여’라는 제도적 벽 앞에 가로막혔다. 허가 이후 1년이 지난 지금(2025년 9월 말 기준)까지 보험급여 심사의 첫 단계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증(암)질환 심의위원회 심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6개국에서는 파드셉 1차 병용요법에 대해 이미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보험급여가 승인된 영국의 경우 파드셉 1차 병용요법의 임상적 가치와 함께 전이성 요로상피암 환자들과 가족, 간병인들이 겪는 정신적,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함으로써 유연한 경제성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국내 요로상피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이 지난 20년간 단 1%도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치료제”라며 “현재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최우선으로 권고하는 파드셉 1차 병용요법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급여 적용이 안 돼 환자들에게 적극 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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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건복지부에서 시행 중인 ‘제4차 암 관리종합계획(2021∼2025)’에서는 위·대장·간·폐·유방·자궁경부 등 6대 암 위주의 진단 및 치료 대응 과제만 제시돼 있다. 계획서 내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 암 환자 관련 과제가 포함돼 있긴 하나 요로상피암 등 구체적인 노인성 암종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개선 과제나 관리 지표는 찾아볼 수 없어 향후 정부에서 더욱 실질적인 관리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올해 3월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과 대한암학회가 공동 주최한 ‘암 환자의 병용요법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병용요법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제도가 더욱 유연하게 적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당시 제도적 개선을 통해 환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혁신 신약 병용의 대표 사례로 파드셉 1차 병용요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어떤 암에 걸렸느냐에 따라 지원의 범위와 시기가 달라지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신약 간 병용요법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제도가 더욱 유연하게 적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약 간 병용요법은 기존 치료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이며, 전 세계 항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혁신의 흐름이 환자들에게 신속히 닿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벽을 완화하고 정책 추진의 속도를 높여야 할 때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