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기념비.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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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 윤동주 시인(1917∼1945)의 마지막 작품 ‘쉽게 씌어진 시’의 배경이 된 도쿄 릿쿄대가 그를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했다.
11일 도쿄 도시마구 캠퍼스 서쪽 14호관 인근에 설립된 기념비는 좌우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운데 부분에는 윤 시인의 사진이 들어가고 좌우에는 약력과 그가 한글로 남긴 ‘쉽게 씌어진 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실렸다. QR코드도 있어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접할 수 있다.
릿쿄대는 윤 시인이 1942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갔을 때 다녔던 첫 대학이다. 그는 이 대학 영문과를 한 학기 동안 다녔고, 이후 교토 도시샤대로 편입했다. 그간 교토 일대에는 기념비가 많았지만 도쿄에 윤동주 기념비가 생기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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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친구에게 한글로 쓴 이 시를 편지로 보냈다. 릿쿄대를 상징하는 백합 로고와 영문명이 새겨진 편지지에 적혀 있어 창작 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원본은 연세대가 보관 중이며, 릿쿄대는 복사본을 교내 기념관에 전시해 왔다.
릿쿄대는 2008년부터 매년 2월 윤 시인의 기일에 맞춰 교내 채플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또 2010년부터는 한국인 유학생에게 윤 시인의 이름을 딴 국제교류장학금 5만 엔(약 47만 원)을 매월 지원하고 있다.
릿쿄대의 기념비 설치를 계기로 교토 일대의 윤 시인 기념비도 다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도시샤대 캠퍼스 안에는 1995년 시비가 건립됐다. 현재는 교토예술대학 캠퍼스로 바뀐 윤 시인의 교토 하숙집 터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2017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교토 인근 우지의 강변에도 기념비가 설치됐다.
니시하라 렌타 릿쿄대 총장은 이날 기념비 제막식에서 “80년의 세월을 거쳐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에 돌아왔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 중에 남긴 시는 거의 상실됐는데, 그가 친구에게 맡긴 시 5편은 기적적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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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인사말에서 “일본에서는 유학 중 옥사한 시인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며,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교토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고, 옥사한 후쿠오카에서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 릿쿄대 기념비 설립을 계기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물리적 터전은 모두 마련됐다”고 했다.
이혁 주일 한국대사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제막된 이 기념비가 윤동주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는 존재를 넘어 한일 양국의 화해, 협력으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집전한 사제는 “태평양전쟁 패전으로부터 80년을 맞이한 이때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특히 시인 윤동주를 마음에 새긴다”며 “그가 남긴 정의의 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깊은 반성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