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묵주병원장’ 권묘정씨 한알한알 사연 깃든 묵주… 고치지도 못한 채 보관만 하는 분들 많아 합장-연봉 등 매듭 모양 갖가지 ‘퇴원한 묵주’ 받은 신자들 큰 호응… 작은 일이지만 기쁨 주는 데 보람
권묘정 씨는 “어머니가 물려준 거라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는, 헐 대로 헌 묵주가 말끔히 ‘치료’된 걸 보고 좋아하던 의뢰인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일 찾은 병원 접수대에는 ‘치료’를 받으러 온 묵주 환자들이 가득했다. 고작 물건 하나 수선하는 곳일 뿐인데, 거창하게 병원이라니 좀 과한 게 아닐까.
이 성당 신자이자 ‘병원장’인 권묘정 씨는 “가톨릭 신자에게 묵주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묵주 기도’라는 기도 형식이 있을 정도로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성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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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세례를 받으면서 나만의 특별한 묵주를 갖고 싶어 직접 만들어 봤어요.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주변에 소중한 묵주가 망가졌는데, 고치지도 못해 상자에 넣어 보관만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성경이 찢어지거나 훼손됐다고 일반 책처럼 쉽게 버리기 어려운 것처럼, 신자들에게는 묵주도 마찬가지다. 권 씨는 “수선을 부탁받은 묵주 중에는 100년 넘게 대대로 이어지거나,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선물받았다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것도 있었다”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준 묵주는 유품과 마찬가지인데 망가졌다고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묵주를 파는 곳은 있어도, 고쳐주는 곳은 없었다. 권 씨는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묵주를 고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2년 전 신부님께 허락을 받고 다니는 성당 안에 묵주 병원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한 묵주 병원은 신자들의 호응이 좋아 현재 수원교구 호계동 성당 등 모두 6곳에 문을 열었다.
‘묵주, 그까짓 것 줄에 알을 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 오산. 묵주를 꿰는 줄은 실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대부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매듭이다. 외국은 비교적 만들기가 쉬운 번데기 매듭이 많지만, 국내에선 합장·연봉·도래·가락지 등 우리 전통 매듭으로 만든 묵주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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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씨는 “워낙 사연을 가진 묵주가 많다 보니, 망가진 묵주를 고쳐 받았을 때 대부분 오랜 세월 못 보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며 “작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인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