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 한국, 품위있는 죽음을 묻다] 〈4·끝〉 2부 임종기가 덜 두려운 사회로 말기 고통 줄이는 완화의료 필요… 상급병원 40%만 호스피스 운영 임종실 의무화에도 설치율 57%… 연명치료 중단 밝혀도 이행 안되고 임종 전까지 불필요한 치료 많아… 결국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져 “죽음을 개인적 문제로 볼 수 없어 저출산처럼 ‘국가 책임제’ 필요”
지난달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의료진이 오전 회진을 돌며 환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올 5월 기준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103곳에서 병상 1798개가 운영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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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과 돌봄의 질은 100점 기준 60점을 넘기 힘들다.”(김용익 돌봄과 미래 이사장)
“생애 말기 돌봄·의료 정책들이 분산돼 환자 체감도가 낮다.”(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구체적인 사전돌봄 계획(ACP) 작성이 활성화돼야 한다.”(김대균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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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 병상·인력 확충 시급
호스피스는 임종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완화의료가 핵심이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호스피스 이용 환자는 2만4318명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가 환자를 살리는 것에만 집중할 뿐, 임종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중증 환자 사망이 많은 상급종합병원 중에도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곳은 전체 47곳 중 19곳(40.4%)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부터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의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올 5월 기준 상급종합병원 설치율은 57.4%(27곳)에 그쳤다. 윤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등에서 적절한 통증 관리와 심리적 지원을 못 받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가 많다”며 “미국 뉴욕 메모리얼 병원 등 해외 대형 병원처럼 호스피스 병동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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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장에선 호스피스 대상 확대보다도 기관과 인력 확충, 호스피스 이용 시기 등에 대한 진료과별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도 전체 호스피스 환자 중 암 외 4개 질환 환자 비율은 1% 미만이다. 기대 여명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암과 달리 치매 등은 질병 진행 과정이 다양해 호스피스 전환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완화의료가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론 호스피스 질환 확대가 필요하다”면서도 “신부전 환자라면 언제부터 투석을 중단하고 완화의료를 받을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의료진도 치매 환자 등에게 어떤 완화의료를 제공해야 하는지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 임종기 의료 중심 ‘병원에서 집으로’
전문가들은 생애 말기 돌봄은 집과 지역사회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가정형 호스피스 신규 이용자는 2245명에 불과했다.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도 올해 기준 40곳뿐이다. 현재 운영 중인 방문 진료 시범사업, 재택의료 센터 등을 활용해 ‘집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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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당사자가 재가 임종을 원해도 보호자는 사망 신고부터 장례까지 부담이 커 다시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재택의료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불필요한 병원 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호스피스와 방문 진료,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 개별 사업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전돌봄 계획 작성 정착돼야”
2018년 2월 전면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도 허점이 적지 않다.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미리 밝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올해 300만 명을 넘었지만, 정작 임종기엔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반대하거나, 병원에서 임종기 판단을 미루기도 한다.
이는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죽기 직전까지 비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거나 인공 영양 공급을 받는다. 건강보험연구원의 2023년 사망자 분석 결과 사망 30일 이전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 경우 마지막 한 달 의료비(약 460만 원)가 일반 사망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김 이사장은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려면 병원에 이를 결정할 윤리위원회가 있어야 하는데, 요양병원 대다수는 위원회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 윤리위원회 설치율은 지난해 기준 10.5%에 그쳤다.
연명의료만 중단했을 뿐 임종 전까지 불필요한 치료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임종 직전 환자에게 불필요한 심혈관 질환 예방약을 처방하고, 일반 환자처럼 2L짜리 수액을 맞게 해 폐에 물이 차고 팔다리가 부은 채 눈을 감는 환자가 많다. 임종에 가까울수록 의료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종양내과)는 “완화의료가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들도 ‘왜 포기하느냐’며 임종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호스피스가 활성화되려면 환자와 의료진의 소통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구체적인 사전 돌봄 계획(ACP)이 필수다. 호주, 미국 등에선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해 호흡 보조 장치 사용, 항생제 처방 등 특정 치료 이행 여부까지 미리 정한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약 처방이나 검사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페디큐어를 받겠다’처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소망을 적기도 한다.
● “죽음을 국가 정책 과제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죽음을 개인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청년 정책처럼 ‘품위 있는 죽음’도 정부가 나서야 체계적인 정책 수립,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애 말기 돌봄과 의료에 들어가는 간병비, 호스피스 등 비용을 투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 이사장은 “초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망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이들을 돌볼 자녀 수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돌봄의 강도는 더 세지고, 노동력은 부족해지는 인구 축소기엔 정부가 생애 말기 돌봄을 적극 지원해야 젊은층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국가가 국민의 죽음의 질까지 살피겠다는 ‘웰다잉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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