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국가전산망 마비] 국정자원 화재 상황 작년 6월 점검때 배터리 교체 권고… “올해 점검땐 문제 발견 안돼” 해명 일각 비전문 인력 투입 가능성 제기… 리튬배터리 고열-서버 침수 우려에 물 대신 가스로 진화… 22시간 걸려
27일 김민석 국무총리(가운데)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전날 오후 화재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찾아 소방 당국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건물 앞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불에 탄 배터리를 하나씩 수거해 대형 수조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소방대원은 “새까맣게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완전히 소화하려면 물에 담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과 국정자원 관계자들도 현장에 나와 배터리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 등 원인 조사 준비에 분주했다.
● 화재 22시간 만에 완진… 수습도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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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27일 오전 6시 30분경 잡혔으나 오전 8시 40분 다시 발화했다. 잔불 제거와 냉각 작업을 이어간 끝에 최종 진화가 이뤄진 시각은 오후 6시경. 화재 발생 후 21시간 45분 만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소실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28일 오전 소화용 대형 수조에 담겨 있는 모습.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반 소화기로 완전 진화가 어렵고 물을 뿌려도 불이 되살아나 이동식 침수조에 오랜 시간 담그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전=뉴스1
하지만 국정자원은 국가 주요 전산 서버가 밀집한 곳이라 물 사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 당국은 가스 소화 설비를 활용해 천천히 불길을 잡는 한편, 다른 전산 장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냉각 작업을 병행했다. 김기성 대전 유성소방서장은 26일 현장 브리핑에서 “물로 배터리를 식히면 더 빨리 끌 수도 있었지만, 서버 장비가 침수될 수 있어 기체(가스)로 불을 껐다”고 설명했다.
진화 후에도 전산실 내부는 뜨거운 열기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전산실 내 온도와 연기를 외부로 빼내야 했고, 배터리와 케이블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스파크로 인한 2차 화재 가능성도 높아 반출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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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 관리 문제, 작업자 과실 여부 모두 조사
소방·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28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합동 현장감식에 착수했다. 감식팀은 전산실 배선과 배터리 잔해, 분리 작업 당시의 케이블 연결 상태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며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우선 배터리 노후화가 화재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불이 난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2012∼2013년 생산해 LG CNS에 납품한 뒤, 별도 제조업체를 거쳐 UPS 시스템에 조립돼 2014년경 국정자원에 설치됐다. 제조사가 보증하는 내구 연한(10년)을 이미 1년 넘긴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국정자원 인프라 안전 점검에 참여한 민간 기업들이 배터리 교체 시점이 도래했다며 교체를 권고했다고 한다. 국정자원은 지난해 교체 권고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올해는 없었고, 올 6월 점검에서 외관상 이상이나 전압·성능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작업자 과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배터리 분리 작업을 맡은 인력이 배터리 제조사나 유지보수 전문 인력이 아닌 제3의 업체 직원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성이 부족한 작업자가 분리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화재 초기에는 전원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를 분리하다 불이 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에 국정자원 측은 “전원을 끊고 40분 뒤 불꽃이 튀었다”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이 서버 전원을 차단한 상태에서 분리를 진행했다는 의미다.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은 “정확한 원인을 신속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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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