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전략이 가야 할 길 AI 생태계, 인재-자본-시장 共진화… 기술 확보 넘어 생태계를 설계해야 韓, AI 인력 부족하고 해외 유출 중… 민간투자 美 48분의 1, 자본력 달려 싱가포르 ‘개방형 진화’ 본뜰 필요… 칩, K컬처 등에서 주도적 협력해야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인공지능(AI) 생태계’도 이와 같다. AI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 이를 상품화하는 기업, 다양한 사용자, 투자하는 자본가, 정책을 만드는 정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대학과 인재가 서로 얽혀 돌아간다. 한 요소가 약해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자연 생태계는 ‘공진화(共進化)’한다. 모든 생명체는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고 변화하면서 하나의 조화로운 계(界)를 유지한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AI 생태계도 이렇게 공진화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진화의 방향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정책 설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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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도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2023년 한국의 민간 AI 투자는 14억 달러(약 1조9300억 원) 수준으로, 미국(672억 달러)의 48분의 1 수준이다. 빅테크 4사의 2024년 합산 설비투자 23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이 AI 데이터센터·서버에 쓰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5년 약 800억 달러 AI 투자 계획을 알렸고, 2026년에는 1200억 달러 수준까지도 시사했다. 국내 AI 시장 매출은 2024년 규모는 6조3000억 원으로 추정돼 약 72조 원 규모인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 턱없이 작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는 ‘소버린 AI’를 내세우며 자립형 AI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소버린 AI는 핵심 기술 확보를 넘어 자국의 데이터와 인프라로 그 나라의 문화와 가치를 반영하는 AI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AI 거버넌스와 독자적 산업 발전을 이루겠다는 포괄적 전략이다. 타당한 목표지만 접근 방식을 잘못하면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고립된 섬이 될 위험이 크다.
자본 유치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갈등으로 투자 기피국이었지만 정부의 ‘버드(BIRD·Binational Industrial Research and Development)’ 프로그램이 게임체인저 역할을 했다. 미국의 유력 기업들과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협력 비용의 50%를 정부가 지원한 결과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강국’이 됐다. 1990년대 나스닥에 상장한 이스라엘 기업 상당수가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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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접근도 중요하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렵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임에도 ‘SEA-LION’이라는 동남아시아 전용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아세안 전체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2030년까지 AI가 동남아 총 국내총생산(GDP)에 1조 달러를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처음부터 광역시장을 겨냥한 전략이다. 우리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K-AI 수출 패키지’ 같은 정부 차원의 해외 진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개방할 수는 없다.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기술은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우리만의 ‘비밀병기’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소버린 AI의 진정한 의미는 고립이 아니라 주도권을 가진 협력이다. 반도체 강국으로서 AI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허브가 되거나, K컬처의 성공을 바탕으로 창의적 AI 콘텐츠 분야에서 앞서가는 식으로 우리 강점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개방과 협력을 통한 ‘스마트 진화’만이 AI 시대를 살아갈 길이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