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로 쓴 소설들/고관수 지음/360쪽·2만2000원·계단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1722년 발표한 ‘전염병 연대기’의 일부다. 중심인물도, 극적인 플롯도 없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실상 ‘페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17세기 페스트 대유행의 처참함이 오롯이 전해진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감염병에 관해 쓴 책이다. 한센병 콜레라 매독 성홍열 발진티푸스 말라리아 등 감염병 14개를 다룬다. 병의 증상과 환자의 고통, 병이 남긴 문화적 흔적 등을 여느 논문보다 생생하게 다루는 여러 소설을 살폈다.
광고 로드중
저자는 문학을 감염병의 사회적 의미를 살피는 도구로 활용한다. 우리가 함께 가까스로 통과해 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은 어떤 시대였을까. 소설가 윤고은이 ‘도서관 런웨이’(2021년)에서 묘사한 구절을 읽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누군가의 숨이 위협이 되는 시대, … 안경을 쓰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 위험이 적어진다는 통계가 읽히는 시대, 생일 촛불을 입김으로 불어서 끄는 것도 모험이 되는 시대, 거리두기의 시대에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유예하지 못하고 의심하지도 못하고 그 위로 미끄러졌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