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좁은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치료법이지만, 약이 아닌 말을 매개로 이뤄집니다. 분석을 받는 피분석자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옵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분석 과정과 자신이 할 역할에 동의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분석 시간에는 피분석자가 자신의 마음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거르지 않고 분석가에게 이야기하기로 처음부터 약속돼 있습니다. 이를 ‘자유연상’이라고 부릅니다. 분석가는 그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의미를 파악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적절한 시점에 ‘해석’이라는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피분석자의 마음은 원래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마음 한구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다른 구석은 그런 마음을 가립니다. 자유연상은 되도록 그렇게 하려는 노력이지 완벽하게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치심이나 죄책감이나 분석가에게 인정받지 못할 불안감에서 숨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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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과정에서, 심지어 분석 시작 전부터 피분석자는 분석가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좋게 여기는 감정, 싫어하는 감정, 섞인 감정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를 전이 감정이라고 합니다. 전통 정신분석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품었던 감정이 분석가에게 옮겨 온 환상으로 다뤘으나 이제 현실의 분석가에 대한 감정도 포함합니다.
누구나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피분석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분석가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화가 나도 화를 직접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긍정적인 감정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과거에 상대방에게 거부당한 경험을 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면, 대화의 내용이 분석 과정에 힘을 실어주지 못해도 해결하는 방향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큰 어려움은 피분석자의 침묵이 연장되거나 반복될 때 닥칩니다. 일단 흐름이 끊어진 것이니 이어가야 할 묘책(?)을 궁리해야 합니다. 침묵은 대체로 피분석자 마음에 끓고 있는 저항, 방어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거나, 너무 오래 침묵하면 그렇게 하고 있음을 말로 피분석자에게 알립니다. 효과가 없으면 저항, 방어를 해소할 전략을 짜내야 합니다. 애를 써서 다루지 않으면 분석의 정체 상황이 중단으로 훌쩍 넘어갑니다.
때로는 피분석자 자신이 마음에 지닌 것을 표현할 능력이나 방법이 없어서 침묵합니다. 옷장 속의 잊혀진 ‘옷’에 비유할 만한 숙성된 생각이 떠오르면 구체적인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원단 조각’ 정도인 숙성되지 않은 ‘생각 조각’을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분석가의 직관력을 발휘하면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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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는 말, 감추려는 말, 침묵은 세상살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감추려는 말이 우세입니다.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편집된 말들이 대세입니다. 침묵도 자주 활용됩니다. 말이 지닌 다층구조는 표피가 아닌 깊이를 들여다보아야 본질이 제대로 파악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