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프랑스인의 치즈 사랑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26.5kg이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70g이다. 한국인의 김치 소비량(연간 36kg, 하루 99g)에 견줄 만한 수치다.
프랑스 파리의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30m가 넘는 치즈 코너가 눈앞에 펼쳐진다. 프랑스어로 치즈를 뜻하는 ‘프로마주(fromage)’에서 나온 말로, 치즈를 만드는 공방이나 판매하는 가게를 통칭하는 ‘프로마주리(fromagerie)’는 동네마다 있다. 그 프로마주리에서도 수십 종의 치즈가 기다린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사의 마지막 코스로 치즈 카트가 등장해 손님이 직접 고른 치즈로 만찬을 마무리하는 풍경도 흔하다. 치즈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일상과 미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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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쥐라에서 생산되는 ‘콩테’는 프랑스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치즈다. 고소한 견과류 향과 짭조름한 미네랄 풍미가 화이트 와인 샤르도네와 만나면 그 조화가 더욱 빛난다. 화산 지형 오베르뉴의 ‘생 넥테르’는 깊고 고소한 향을 지녔다. 푸른곰팡이가 핏줄처럼 퍼진 ‘로크포르’는 양젖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블루 치즈다. 꿀과 무화과, 달콤한 소테른 와인과 함께할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겨울철 알프스 산간 마을에서는 ‘라클레트’가 하나의 계절 풍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어로 ‘긁다’라는 뜻을 가진 이 치즈는 불에 쬐어 녹인 단면을 칼로 긁어 찐 감자 등에 얹어 먹는다. 겨울철 다양한 먹거리가 없는 산간 지역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품에 와인을 곁들여 먹던 습관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이제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됐다.
치즈는 지역의 자연과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치즈를 맛보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또 다른 여행이 된다. 단순히 맛의 향연을 넘어,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진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접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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