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장관석]그날의 한덕수

입력 | 2025-08-31 23:18:00


12·3 비상계엄의 밤, 국정 2인자였던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의 행적에는 모호한 대목이 많다. 그는 계엄 포고령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고, 계엄 선포문은 “계엄 해제 후 사무실로 출근해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가 열린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과 복도 폐쇄회로(CC)TV에 담긴 영상에는 해명과 다른 게 여럿 있었다.

▷특검 설명에 따르면 영상에서 한 전 총리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참석 인원을 세는 듯했다. 김 전 장관이 손가락으로 넷과 하나를 표시했는데, 특검은 국무회의 정족수까지 “4명 남았다”, “이제 1명 남았다”는 대화 장면으로 해석했다. 한 전 총리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국무회의 참석을 독촉했다고 한다. 그날 밤 국무회의가 끝나자 한 전 총리는 “회의 참석 의미로 서명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며 장관들에게 계엄 선포문 서명까지 권했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이 계엄에 반대하며 문건을 회의실에 두고 나가자, 한 전 총리가 이를 직접 수거하는 장면도 CCTV에 찍혔다. 그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단둘이 남아 16분 동안 계엄 관련 문건을 검토했다. 이 포고령에는 국회 폐쇄, 정치활동 전면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처단 등 듣기만 해도 수용할 수 없는 위헌·위법적 내용이 다수 적혀 있었다. 계엄 선포 전인 오후 8시경 대통령 집무실에서 포고령을 가장 빨리 받은 사람도 그였다.

▷12월 4일 오전 1시 2분 국회는 계엄 해제를 가결했다. 한 전 총리는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했어야 하지만, 소집을 건의하지 않았다. 국무조정실장이 “계엄을 해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 전 총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다리라”며 시간을 끌었다. 야당은 이런 시간 끌기를 추가 계엄 가능성 모색 아니냐는 의심을 해 왔다. 결국 계엄 해제 국무회의는 오전 4시 27분에 열렸다. 선포는 재촉하고 해제는 지연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결국 불법 비상계엄에 절차적 정당성을 보탠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경제부총리, 주미 대사, 두 번의 국무총리를 거친 50년 관료다. 50년 공직 본능일까. 그는 위헌적 계엄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절차를 따르는 쪽을 택했다. 기억이 없다며 얼버무렸던 해명도 특검이 CCTV를 들이민 뒤에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선포문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2022년 5월 국회 인준 직후 “책임 총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던 그였다. 불법 계엄의 밤, 대통령의 폭주를 막을 ‘최고 헌법기관’인 그에게서 책임지는 모습은 끝내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관석 논설위원 jks@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