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이피 첫 산문집 ‘이피世’ “내 작품, 아픈 사람이 보는 창문이길”
13일 첫 에세이집 ‘이피세’를 낸 이피 작가는 “삶과 죽음, 피부와 피부, 인간과 신, 서양과 동양 그 사이에 존재하는 떨림을 발견하는 게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난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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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품 콘셉트를 잡을 때 그림보다 글을 더 많이 씁니다.”
올 2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현대예술재단이 선정하는 ‘도로시아 태닝상’을 받은 현대미술가 이피(44)가 첫 산문집 ‘이피세’(난다)를 펴냈다.
이 작가는 강화플라스틱부터 불화(佛畫)의 금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해온 작가다. 그는 13일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작업할 때 글과 그림은 한 덩어리로 있다가 그림을 그리고 나면 글이 잔여물처럼 남는다. 마치 혜성이 지나간 뒤 꼬리가 남는 것 같다”며 “그 꼬리를 그러모은 게 저의 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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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선 미술가의 내면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폐오징어 수천 마리를 조각조각 자르고 붙여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2010년 작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는 늘 좋은 향기가 나던 할머니에게서 돌아가시기 직전 맡았던 냄새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호스피스에 오래 계셨어요. 호스피스를 다니며 느낀 게 모든 아픈 사람은 안에 있다는 겁니다. 호스피스 할머니들은 항상 창문을 보고 계셨어요. 작가로서 저는 아픈 사람을 자처해서 창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갤러리에 있는 저의 그림과 책에 있는 저의 글은 아픈 사람이 보는 창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문을 만드는 게 저의 작업인 셈이죠.”
이 작가는 김혜순 시인과 이강백 극작가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글을 쓰셔서 자신도 창작 활동을 하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집에선 그냥 엄마다. 여느 딸처럼 엄마한테 짜증도 낸다”며 “엄마를 어떻게 넘어서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그냥 우리 엄마니까”라고 했다.
김 시인의 시집 ‘죽음 트릴로지’ 표지에 실린 이 작가의 드로잉도 “강제적 차출”이었다며 웃었다. “협업이 아니라 엄마가 ‘책 나오니 드로잉을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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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