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DRI AI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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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크기는 고정돼있다’ 란 문장이 떠오른 건 이사 먼지 가득한 방 앞에 섰을 때였어요. 동굴처럼 아늑한 방을 보자 그리스의 이 악명높은 강도가 가늘게 눈을 뜨고 자신의 침대 길이와 잠이 든 여행자의 키를 가늠해보는 모습이 그려졌죠. ‘어쩌면 신화 속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들이 비난하듯 원래부터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침대 길이는 정해져 있으니 그의 머리 속에는 여행자의 다리를 자르거나 잡아 늘이는 두 가지 방법만 있었을 뿐, 여행자와 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같은 건 하지 못했던 거야. 그것이 업보일 수도.’
그 몇 주 전, 나는 오피스텔에서 월세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후배에게 침대를 사주겠다고 호기롭게 약속했고 당근마켓에서 마음에 쏙 드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프레임을 발견해 좋은 가격으로 거래를 완료했으며 이사 당일, 단골 용달차 기사님으로부터 침대 판매자의 집에 막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참이었어요. 후배는 침대가 들어오면 아파트가 확 살아날 것 같다고 나만큼이나 흥분해 있었습니다.
막상 침대가 들어갈 그 집의 유일한 방을 보니 ‘크기가 고정된’ 침대를 집어 넣으려면 벽을 200cm쯤 거실로 밀어내야한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앞이 뿌연 건 먼지 때문이 아니라 나의 충동 거래로 인한 결과가 홀로그램처럼 오버랩됐기 때문일 겁니다. 인생을 반쯤 살고 나서야 침대란 침실 방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하고, 침대의 길이는 침대의 헤드와 매트리스를 더한 것임을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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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거 거래 평가를 보니 거래 취소는 처음인 거 같네요. 그쪽도 곤란하시겠어요. 취소해드릴게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진심으로 알게 된 순간, 진심을 전하느라 감히 전화를 끊지도 못했어요. 용달차 기사님에게 편도 운송비를 보내고 후배에겐 싱글 침대를 선물하는 것으로 거래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어수선한 꿈처럼요.
며칠 전 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났어요. 몇 달 전 중고거래앱에 올려놓은 캣타워의 거래 당일, 물품을 분해하고 청소하고 부분별로 포장해서 아파트 1층으로 옮겼습니다. 시간에 맞춰 승용차가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부부와 나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어요. 그러나 포장한 캣타워를 본 부부의 걸음이 갑자기 느려졌고 다가오는 네 개의 동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머뭇머뭇 캣타워 박스를 차에 실으려는 남편 옆에서 “이렇게 클 줄 몰랐는데, 꼼꼼히 사이즈를 봤어야 하는데, 집에 놓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아내는 울상이 되었어요. 중고거래가 성사되자마자 새 캣타워를 주문한 내 입장에선, 분해한 캣타워를 다시 건설한다는 건 신축 옆에 헐었던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거래 취소는 불가’라는 판매 조건을 내밀어야 했지요. 구매자가 부르는 대로 가격을 협의해 물품값도 받았거든요.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캣타워가 클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야 했을까요(대개 처음 캣타워를 설치하면 크기에 당황합니다). 나는 잠시 구매희망자의 거래평을 일람했어요. ‘친절한 분’ ‘나눔에 감사’ ‘늦은 밤 거래물품을 갖다주셨어요’ 등등.
“곤란하시면 거래 취소해드릴게요. 어차피 캣타워 분해해서 포장 해둘 거여서 큰 문제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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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e_carrot 당근, 고양이, 글쓰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