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쿠 아키요(紫竹昭葉) 할머니…
꽃무늬 옷을 즐겨 입었던 시치쿠 아키요 여사. 시치쿠 가든 제공
8월의 홋카이도 정원들은 초록 경관과 자생식물, 지역의 맛과 멋이 어우러지는 감각의 장소다. 사진은 오비히로시에 있는 시치쿠 가든. 한진관광 제공
당신이 남긴 이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썼던 꽃장식 모자들. 시치쿠 가든 제공
인간이 자연을 지키고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 아래 남은 생을 온전히 정원에 바치셨지요. 나이를 핑계 삼아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꿈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여행은 계획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요.
다음 달 떠날 일본 홋카이도 정원여행을 앞두고 제 마음은 벌써 당신의 정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나 마음속에 피우고 싶은 꽃이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피어난다”고 하셨죠. 30여 년간 6만㎡ 부지에 2500종 이상의 꽃을 가꿔 계절마다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시치쿠 가든. 그곳에서 8월에 만날 강렬한 색감의 다알리아를 특히 기다립니다.
2021년 5월, 당신은 평소처럼 오전 6시에 정원을 돌보다가 꽃씨를 쥔 손을 내밀며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꽃밭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정원처럼 살다가 정원에서
눈을 감으셨으니 삶의 마지막까지 당신답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훗날 명랑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시치쿠 가든의 꽃구경 도시락. 시치쿠 가든 제공
장미향 소프트 아이스크림. 시치쿠 가든 제공
참, 10년 전 시치쿠 가든을 다녀온 춘천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그때 할머니께서 “부산에 가 본 적이 있다”며 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주셨다네요. ‘사이좋은 두 사람의 꽃 여행. 정말 기쁘네요’라고 책에 사인도 하셨고요.
그 부부는 지금도 당신의 그림이 담긴 명함을 꺼내 본다고 합니다. 등 뒤로 두 손을 모아 꽃을 들고 있는 당신은 누구에게 꽃을 건네시려던 걸까요. 시치쿠 가든을 걷다 보면 꽃무늬 옷을 입은 당신이 어느 모퉁이에서 나타나 그 꽃을 살며시 내밀 것만 같습니다.
조만간 홋카이도 오비히로시 시치쿠 가든에서 뵙겠습니다, 시치쿠 할머니.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의 정원이 제 마음에도 여름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2025년 여름, 당신께 가는 길목에서.
이밖에 가 볼 만한 홋카이도 정원
>> 토카치 천년의 숲 / ‘천년을 살아갈 숲을 오늘 심는다’는 비전을 실감할 수 있는 곳. 대지의 정원(Earth Garden)은 언덕 자체가 정원이 되고, 숲 정원은 자생식물 생태계를 예술처럼 연출한다.
>> 토카치힐스 / 영국 조경가 댄 피어슨의 디자인이 깃든 언덕 위 정원. 유기농 채소와 허브가 어우러진 키친 가든과 들꽃길이 조화를 이루며 공예 전시관도 함께 운영된다.
>> 우에노팜 / 홋카이도의 기후와 식생에 맞춘 북유럽풍 코티지 가든. 온실과 자작나무 숲, 야생초 정원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 카제노가든 / ‘바람의 정원’이라는 뜻. 같은 이름의 TV 드라마 무대이자 삶과 죽음, 가족의 화해를 꽃으로 이야기하는 정원. 여름이면 450여 종의 꽃이 바람 따라 흐드러진다.
>> 롯카노모리 / 홋카이도 제과 브랜드 ‘로카테이’가 자사(自社)의 포장지에 그려진 여섯 송이 꽃을 심어 만든 정원. 에조엔류, 하마나스 등 지역 자생화를 만날 수 있다.
>> 다이세쓰 모리노 가든 / 대설산 자락의 자생식물 정원. 초지의 결, 바람의 흐름, 이슬의 양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초지의 색감은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한 ‘야생 정원’의 이상을 구현한다.
>> 마나베가든 / 자연석과 흙길, 풀 한 포기까지 ‘정원은 남겨지는 것’이라는 철학을 실현한 정원. 시간이 머무는 풍경을 조용히 보여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