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 美에 안보 의존 낮추고… 러시아에 맞서 유럽동맹 보호 강화 핵 정책-운용 협력 ‘감독그룹’ 설립… 차세대 미사일 개발 등 협력 확대 “유럽, 말없이 美로부터 탈동조화”
스타머-마크롱 “유럽 안보 책임 다할때” 핵협력 합의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 영국 런던의 총리 관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최초로 양국의 핵무기 사용 협력에 전격 합의했다. 런던=AP 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국빈 방문을 시작한 8일 영국 의회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 날 영국 정부는 양국이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양대 핵 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핵전력을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유럽 동맹국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발을 빼려 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걸쳐 실질적인 핵우산을 제공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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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양국은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과 영국 내각이 공동 의장을 맡는 ‘핵 감독 그룹’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 기구는 핵 관련 정책, 운용, 협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담당 관리로 일했던 윌리엄 알베르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양국이 핵무기 공동 개발까지 확대하진 않겠지만 탄두 설계 연구를 교류하고 자재를 공동 운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핵심적인 핵 억지력은 잠수함 발사 미사일이다. 영국은 이 미사일을 미국에서 조달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 발사 옵션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엔 미국산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미국 F-35A 전투기 구매 계획도 포함됐다. 프랑스의 핵무기는 자체 개발된 잠수함 발사 및 공중 발사 미사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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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팎에선 영국과 프랑스의 이번 결정을 두고 파격적인 조치란 시각이 많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기획그룹(NPG) 회원국으로, 나토 안보를 위해 자국의 핵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토 핵공유 협정에서 탈퇴해 핵전력 사용과 관련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핵전력 운용이나 협력을 놓고 입장 차이가 있던 두 나라가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유럽 관련 안보 전략 변화로 손을 잡았단 평가가 나온다.
필립스 오브라이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이) 말 없이 미국으로부터 탈동조화(decoupling)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