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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과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게임.’
두 게임 중 당신에게 더 중요한 게임은 어느 쪽인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질문의 답은 달라진다. 서구인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 동양인은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게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서구인은 ‘이겨야 한다’는 성취 관점으로 접근하고, 동양인은 ‘지면 안 된다’는 실패 회피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데 사실 두 게임은 같다.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고, 지지 않으려면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설명하는 방식, 프레이밍(framing)뿐이다. 심리학에선 이 차이를 ‘향상 초점(promotion focus)’과 ‘예방 초점(prevention focu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향상 초점을 가진 사람은 이상이나 성취, 성장 같은 ‘더 나아짐’을 목표로 삼는다. 기회를 탐색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 있으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예방 초점을 가진 사람은 의무와 책임, 실수 회피에 더 민감하다.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는 것 자체를 중요한 성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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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리더의 언어 차이는 조직 전체의 사고방식과 의사결정의 프레임을 결정한다. 말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성과를 결정한다. 조직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향상 초점은 도전적 목표 설정과 적극적 전략을 통해 성과를 높인다. 반면 예방 초점은 최소 기준 충족에 머무르며 상대적으로 성과를 낮춘다. 창의성과 혁신 행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향상 초점은 탐색적 행동을 촉진하는 반면에 예방 초점은 창의성 발현을 제한한다. 예방 초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예외도 있다. ‘안전 행동’처럼 규칙과 절차의 준수가 중요한 영역에서 예방 초점은 사고를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차이는 결국 사람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 또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한다. 향상 초점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무엇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성장을 꿈꾸고 실수보다 기회를 더 크게 본다. 반대로 예방 초점을 가진 사람은 ‘지금 가진 것을 어떻게 지킬까?’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새로운 가능성보다 책임을 다하고 실수를 피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 결국에는 조직의 성과 차이로 이어진다.
예방 초점을 내세운 리더십이 조직문화에 일반화되면 조직 전체의 성장, 만족감, 혁신력을 저해할 수 있다. 앤절라 리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000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독립적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향상 초점 상황을, 상호의존적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예방 초점 상황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처럼 상호의존적 자아가 강하게 형성되는 문화에서는 실수에 대한 민감성, 책임 회피적 사고, 예방 중심의 전략이 훨씬 더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결과는 상황적 맥락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동일한 과제를 개인 과제로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향상 초점을 예방 초점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줄 기회야’라는 식의 생각이 작동한 것이다. 반면 팀 과제로 소개했을 때 예방 초점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내가 실수하면 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라는 생각이 활성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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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0호(7월 1호)“ ‘팀을 위해’보다 ‘너를 위해’가 혁신 자극한다”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정리=백상경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