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 국내 유일 디지털 인쇄기 회사 명성… 장영실상 수상 등 ‘기술명가’ 인정 잉크젯 기술 미세 분사 제어력 활용… 의료기기·진단 도구 개발에도 도전
위기를 기회로 바꾼 혁신의 시작과 2024년 대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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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두천시에 위치한 ㈜딜리 본사 전경.
당시 많은 동종업계 기업이 사업을 접거나 다른 분야로 전환하는 가운데 전기공학 박사인 최 대표는 다른 선택을 했다. ‘더 이상 새로운 혁신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미래를 내다보며 친환경과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포착한 것이다. 그의 풍부한 공학적 지식과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와이드포맷 UV인쇄기
지난해 딜리의 눈부신 성과에는 명확한 전략이 뒷받침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디지털 잉크젯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고객들에게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인쇄 속도와 안전성, 품질이 강화된 와이드포맷 프린터 신제품 출시가 핵심 동력이 됐다. 이 제품은 기존 대비 60%나 향상된 속도와 안정성으로 생산성을 혁신해 고객들의 비즈니스 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게 했다.
유럽 최고의 디지털 인쇄 관련 전시회 FESPA 2025 에서 국제세미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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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기술 축적의 결실, 핵심 제품들의 탄생
디지털 라벨 인쇄기
이후 UV LED 경화 기술과 고해상도 잉크젯 헤드 제어 기술에서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특히 잉크젯 헤드의 미세한 분사 제어 기술과 UV LED의 최적 경화 조건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러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이 현재 딜리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현재 딜리의 핵심 제품은 2017년 출시된 디지털 라벨프레스 ‘네오 피카소 플러스’다. 1세대 제품인 ‘네오 머큐리’에서 시작해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이 제품은 무려 15년 가까이 개발에 투자한 회사의 기술력이 집약돼 있다. 기존 아날로그 인쇄 방식과의 가장 큰 차별점은 숙련공이 필요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쉽고 빠르게 다양한 소재에 직접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속도 향상을 넘어 전체 인쇄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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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수성 인쇄 북메이커
친환경 트렌드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UV에서 수성 인쇄로의 기술 전환을 위해 수성 연포장·박스 인쇄기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는 잉크·헤드·미디어 전반에 걸친 플랫폼 전환을 의미하며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선진 시장에서의 확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수성 인쇄는 인체와 환경에 거의 무해한 가장 앞선 방식의 인쇄로서 유럽과 북미의 까다로운 환경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 名家 인정…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
2022년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식 선정, 최근수 대표(오른쪽)와 최동희 부사장. ㈜달리 제공
딜리의 기술력은 2016년 디지털 라벨 프레스 기술로 장영실상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2022년 11월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최 대표가 국내 수상자 6315명 중 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기술개발자 36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특별한 영예를 얻었다. 이는 30년간 일관된 기술혁신 노력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한국 제조업 발전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현재 딜리는 수많은 국제 및 국내 인증을 통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았으며 UV 잉크젯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미국 UL, 독일 TV, EU의 RoHS 등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이는 설계 단계부터 인증 부품과 국제 안전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는 지식 개발 역량을 갖췄다는 의미로 다른 제조국이나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UL 인증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복잡한 안전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까다로운 인증이다.
딜리는 2011년 1월 코스닥시장 상장에 이어 2016년 6월에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월드클래스 300은 정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 중소기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딜리가 중소기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현재 전 세계 4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기술 명가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심의 기업 문화로 100년 기업 향할 것”
2025 ISA International Sign Expo 미국. 라스베이거스 4.23-25 사인 그래픽 관련 기술과 제품을 전시하는 국제 전시회.
개인화·소량 생산, RFID 특수 라벨, 당일 납품 등 디지털 인쇄기만이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도 딜리에 무한한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시장의 지속적 성장에 대응해 특화된 솔루션을 개발하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특히 e-커머스 확산으로 개인 맞춤형 포장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딜리의 디지털 인쇄 기술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 체계 혁신도 주목할 만하다. 최 대표의 차녀인 최동희 부사장이 해외 관련 모든 비즈니스를 총괄하며 2세 경영 체계를 구축했다. 최 부사장은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과 젊은 세대의 디지털 친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딜리의 해외 진출을 더욱 체계화하고 있다. 체계적인 해외 사업 관리를 통해 딜리는 더욱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 중심의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높은 안정성과 정직한 고객 대응력으로 고부가가치 시장 개척을 위한 조직적 노력을 펼치고 있는 딜리. 30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혁신 DNA를 바탕으로 100년 기업을 향한 대장정에 나선 숨은 강자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생존 문제… 지식 전달과 교육이 핵심”
최근수 ㈜딜리 대표 인터뷰
최 대표는 “디지털 인쇄로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라며 “지속가능성과 고객 맞춤형 가치 제공이야말로 향후 10년 한국 인쇄산업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개인화·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 폭증과 환경친화적 생산 요구를 높이면서 전통적인 대량생산 인쇄 방식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들의 외국산 장비 선호 현상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최 대표는 “과거 아날로그 인쇄 장비가 인쇄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에 외국산 장비 선호는 단시간에 변화하기 어렵다”면서도 “국내 고객의 실제 사용 후기를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딜리는 국내 유일의 디지털 인쇄기 제조사라는 강점을 살려 국내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과 밀착형 기술 지원 역량을 통해 품질 신뢰도를 제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인쇄 업계의 디지털 전환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점에 대해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대표는 “디지털 인쇄로의 전환은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지식 전달과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딜리는 고객 기술 세미나, 샘플 테스트 프로그램, 업계 주요 협회 지원 등을 통해 고객의 디지털 친화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밝혔다.
AI, IoT 등 기술 융합으로 가능해진 개인화·가변 데이터 인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최 대표는 “팬데믹이 가속화시킨 개인화된 인쇄, 패키징 시장에 필수가 된 가변 데이터 인쇄는 디지털 인쇄기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기존 아날로그 인쇄와 달리 적은 투자로도 온라인 기반의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어 중소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본주의 경영철학에 대해서는 지식 기반 산업의 특성을 들어 설명했다. 최 대표는 “개개인이 하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 기반 산업에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윤리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성장할 수 있다”며 “기술 개발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창의성과 열정이 없으면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모든 업무는 사내 시스템과 소통 채널에서 공유 관리되고 있으며 임직원들은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선진국 수준의 업무 시스템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30년간 한 길만 걸어온 기술자이자 경영자로서 최 대표는 “딜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위기 때마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기술혁신을 통해 100년 기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