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車부품 주물업체 공장 르포 산업용 전기료 3년새 59% 올라… 가정용 대신 인상 ‘에너지 포퓰리즘’ 美-中보다 비싸 산업 경쟁력 약화… 전력수요 큰 AI업체도 발목 잡혀
27일 오전 인천 서구의 자동차 부품 주물 업체인 부천주물 공장에서 한 직원이 가동 중지된 전기로를 바라보고 있다. 부천주물 측은 “전기료 절감 차원에서 전기로를 사용하지 않을 때나 점심시간에는 전기로가 꺼지지 않을 만큼의 최소 전력만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광고 로드중
“전기 값이 미친 듯이 올라 적자를 봤습니다. 더 오르면 이제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27일 인천 서구 경인주물공단에서 자동차 부품 주물업체를 운영하는 장용환 부천주물 대표(54)는 지난해 3억 원의 적자를 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사가 경영 악화로 적자를 낸 건 1977년 설립된 이래 47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부천주물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은 2021년 kWh당 129원이었지만 지난해 202원으로 56.6% 올랐다. 상대적으로 값싼 심야 시간대나 주말 등 전기요금도 112.0%나 급등한 탓에 야간, 주말 조업도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전력비 인상분만 3억 원으로 적자 규모와 맞아떨어진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전기요금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광고 로드중
● 막 내린 염가(廉價) 전력 시대
낮은 전기료는 오랜 기간 국내 산업 경쟁력의 생명선이었다. 196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차원에서 비롯된 저렴한 전기요금 정책은 포스코, LG화학 등 국내 제조업이 세계 일류 수준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에너지 포퓰리즘’으로 인해 주택용 전기료 인상이 상당 기간 정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자 당국이 이를 메우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신 빠르게 인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급격한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는 190.4원으로 중국(129.4원), 미국(121.5원)보다 높았다. 국내 제조사 300곳 가운데 70% 이상이 전기료 상승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호소했다.
광고 로드중
산업용이 아닌 일반용 전기료가 적용되지만, 전력 사용량이 많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도 높은 전기료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AI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엘리스그룹의 김재원 대표는 “일반용 전기요금도 2년 만에 40% 넘게 올랐다”며 “400억 원 넘게 투자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마련했는데 정작 급등한 전기료 때문에 AI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요금 인상이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 주는 충격은 미국 대비 2배 이상, 독일과 일본 대비 1.5배 수준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철강, 화학, 시멘트 등 전력 다소비 업종 비중이 높아 경쟁력 저하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인천=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한종호 기자 h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