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중 학생들이 오전 체육 수업시간에 운동장에서 직접 만든 연을 날리고 있다. 조상들의 스포츠 활동 중 하나인 연날리기를 통해 바람을 이용한 과학적 원리를 알게 되고, 자연과 교감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융합적 교육활동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달 13일. 오전 수업 시간에 3학년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 1, 2학년 학생들은 학교 주변 양재천에 있다. 3학년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자연을 주제로, 몸으로 표현하고 사진을 찍는 활동을 하고, 1, 2학년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오전 8시 50분부터 80분간(1∼2교시) 양재천에서 플로깅(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과 4km 단축마라톤을 뛴다. 마을 연계 체육수업이다. 체육 선생님들이 옆에서 안전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고, 재미있게 말동무도 해준다. 양재천 숲 사이를 뛰며 좋은 공기를 마시고 여유를 찾는다.
1등으로 들어온 1학년 구서현 학생은 “1등 했다는 것보다 완주한 것이 더 뿌듯하다. 옆에서 같이 뛰는 저희 반 친구가 격려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더 힘을 내어 뛰었다. 서로 응원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뜻 깊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같이 뛴 1학년 김지안 학생도 “서현이랑 같이 뛰면서 더 많이 가까워졌다. 힘들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서로 속도를 맞춰 보고 격려해 주면서 완주할 수 있었다. 다른 반 친구들 모두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뿌듯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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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트랙에는 허들 몇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세상을 뛰어넘어 보자’는 1학년 학생들의 선택 활동이다.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장과 본관을 오갈 때 허들을 몇 번씩 뛰어 넘는다. 자발적 활동으로 집중해서 넘는다.
허들 가로대에는 ‘폭력’ ‘무관심’ ‘속임수’ ‘포기’ ‘불평등’ ‘비난’ 같은 단어가 적힌 종이가 달려 있다. 갈등을 일으키고 발전을 저해하는 개념들이다. 학생들은 허들을 뛰어넘고 긍정적인 가치로 꾸며진 결승선에 도착한다. 부정적인 개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자는 의미를 새기면서 집중해서 넘는다. 이날 학생들은 7교시(15시)까지 몸을 움직이고, 자신 주변의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하게 하는 생태전환적 체육수업을 통해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인 경쟁과 존중, 공존, 연대, 다양성 등의 의미를 알게 된다. 또한 신체활동과 스포츠에 숨겨진 수학과 과학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교과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12일부터 16일까지는 구룡중이 정한 생태 교육 주간이었다. 체육 교과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가 생태 관련 주제로 2시간씩 블록 타임으로 수업을 실시했다. 수학 수업에는 ‘친환경 교통 수단을 고려한 수학여행 코스 설계’라는 주제를 연결해 ‘정수와 유리수, 비와 비율, 기본 도형’ 단원을 공부하게 했다.
체육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전환하는 생태 스포츠 교육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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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중 학생들이 자투리 시간에 미니 탁구대에서 서브를 넣고 있다. 좋고 나쁜 가치가 쓰인 팻말이 있다. 서브를 해서 나쁜 가치를 쓰러뜨린다. 공존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구룡중의 생태교육 주간 아침에 양재천 주변을 뛴 학생들이 벤치에 앉아 체육, 스포츠 관련 책을 보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학생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보이는 세상이 곧 교과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체육은 교과로 한정된 ‘프레임’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인 것이죠.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스포츠가 세상의 축소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스포츠가 세상의 확대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게 해줍니다. 체육이 수학과 만나면 종목별 경기장의 모양과 규격이 눈에 들어오고, 국어와 만나면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의 멘트가 특별하게 들리고, 미술과 만나면 멋진 경기장 디자이너를 꿈꾸게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포츠로 연결되고 융합할 수 있는 분야와 내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죠. 생태 스포츠는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생태적 관점으로 스포츠를 이해하는 대안적 교육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육 교과만이 아니라 모든 교과들이 ‘따로국밥’처럼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교과 간 벽을 허물고 다양한 융합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모든 교과안에서 ‘체덕지(體德智)’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목으로 구분되는 분절적 교육이 되지 않도록 체육 교사와 다른 과목 교사들의 협력 수업도 시도했다. 수업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다양한 융합수업을 위한 교원학습공동체 모임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교사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오교장의 뜻에 공감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침 운동 크루, 스포츠 런치 리그, 점심 틈틈 자전거 챌린지… 체육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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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중 아침 운동 크루 발대식. 12개 부 112명이 참가했다. 구룡중 제공
학교 본관 뒤편에서 점심시간 짬을 내 탁구를 하려고 학생들이 모여든다. 정해진 횟수로 탁구 서브를 넣으면서 네트 반대편에 ‘불공정’, ‘갈등’, ‘무시’ 등의 나쁜 스포츠 가치들이 쓰인 팻말을 쓰러트려 ‘공정’, ‘정의’ 등의 좋은 가치를 맞추는 것이다. 탁구를 하면서 스포츠를 언어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학생회 학생들이 도우미 조끼를 입고, 친구들이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게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학생들의 자발적 봉사다.
1교시 전에도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3대 체육 실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침 운동 크루’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몇몇 친구들과 걷기, 줄넘기, 축구, 배드민턴, 농구, 배구, 치어리딩, 티볼 등의 팀 크루를 만들어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다. 특정 크루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마라톤을 ‘전교생 러닝 크루’로 정해서 모든 학생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7월11일까지 아침 7시 50분부터 8시 30분까지 학교 주변을 달린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체육 활동으로 생태 실천 점수가 쌓이는데 일정 점수에 도달하면 학교 캐릭터 키링을 선물로 받는다. 실천 누적 점수가 높은 학생은 학교 본관에 설치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등재된다.
학생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공교육의 1번지’ 될 것
단순히 운동 기능을 쌓고, 신체 활동의 가치를 알게 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변화의 시도다. 구룡중 학생들이 생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주변 또는 사회에 자신의 능력과 배운 것을 환원하는 역량, 인성의 가치를 알았으면 한다. 사교육 1번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다른 지역보다 부모나 환경적인 도움을 더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이런 부분까지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배려, 공존, 상생의 가치를 알았으면 한다.
오 교장은 이를 ‘신(新)학력주의’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 교육 1번지 강남에서 신학력주의를 생태 전환적 학교 교육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교육 방식에 대해 학부모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오교장은 “구룡중 학생들 모두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주인공이 되는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공부는 좋은 기억과 연결될 때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기억으로 스포츠 향수를 많이 만들어 준다면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구룡중 학생들이 Sports(건강·신체교육), Study(학습·독서교육), Saving(생태·공존교육)의 3S교육으로 건강근육, 생각근육, 마음근육을 키워 자기 주도적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구룡중의 신선한 도전이 사교육 1번지 강남을 공교육 1번지로 바꾸는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