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서 ‘모네에서…’ 展 남아공 미술관 소장 143점 전시… 17세기~현대까지 시대순 구성 폴 시냐크 ‘라 로셸’ 등 눈호강 새로운 작가 찾아내는 즐거움도
금박을 입힌 배경 위에 붉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팬지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는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인은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로세티와 시달의 아련하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의 여왕’. 해당 작품을 포함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다양한 시기와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렸다.
전시를 총괄한 시모나 바르톨레나 큐레이터가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작품이 있는 인상주의 방에서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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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레나는 JAG의 유럽 미술품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전시에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냐”고 묻자 단박에 “모네와 피카소, 로세티”를 꼽았다.
“모네의 ‘봄’은 물론이고 함께 전시된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의 세 작품은 모두 JAG의 핵심 소장품입니다. 부댕은 모네가 멘토로 여겼던 화가죠. 피카소의 파스텔화 ‘광대’는 화가가 90세 때 그린 작품이지만, 순수하고 창의적 본능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볼 수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드로잉 ‘늙은 남자의 초상’. 세종문화화관 제공
20세기 미술 섹션에선 베이컨의 캔버스 유화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와 케네스 놀런드의 ‘부러진 반지’가 눈에 띈다. 이 밖에 유명 작가들의 판화와 이르마 스턴, 윌리엄 켄트리지 등 남아공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바르톨레나는 “유럽 전시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남아공 화가 같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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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JAG 소장품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퍼러리 △20세기부터 현대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여기에 JAG 설립자를 조명한 △필립스 부부까지 9개 주제로 엮었다.
이런 방대한 전시가 가능했던 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미술 컬렉션으로 꼽히는 JAG의 다양한 소장품 구성 덕이었다. 바르톨레나는 “처음 미술관 수장고에 갔을 때 남아공은 물론이고 유럽 미술 작품 수천 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JAG 미술관은 ‘필립스 여사’로 불렸던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를 비롯한 남아공 부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소장 목록을 키워 나갔다. 특히 영국계인 필립스 여사는 아일랜드 출신 수집가 휴 레인(1875∼1915)의 조언으로 일찍부터 인상파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후원자들의 기증도 더해져 오늘날의 컬렉션이 완성됐다.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볼 수 있는 폴 시냐크의 풍경화 ‘라 로셸’. 세종문화화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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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