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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씨 좋아하세요? 지금 이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네”라고 답한 사람은 Z세대일테고, “버럭,하는 비호감 코미디언?”이라고 되물었다면 세기말 ‘토토즐’과 ‘무한도전’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장년층일겁니다. 요즘 명수 씨의 콘텐츠들이 엄청 ‘힙’해서 20대들 사이에서 준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거든요. 세상 참 빨리,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뀌죠?
저로 말씀드리자면, 박명수 씨의 자기주도형 개그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내뱉는 말이,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무례한 인상비평이거나 속물스런 질문(그래서 얼마짜린데요), 또는 사회성 부족한 인간의 ‘아무말’ (아우, 하기 싫어) 같은 것들인지라 은근 통쾌한 마음이 발동해 유튜브 ‘할명수’까지 따라오고 말았어요.
이제 명수 씨의 팬이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해야할까 봅니다. 명수 씨가 유튜브에서 ‘내돈내산’ 리얼 당근리스트를 공개했는데, 배울 것 많은 진짜 친구를 만난 것 같았거든요. 그가 ‘명품중독 아저씨’로 놀림받을 땐 , 당연히 플래그숍에서 연예인 할인가로 신상 쇼핑을 다니겠거니 했어요(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그도 ‘나처럼’ 발렌시아가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다 포기하곤 한다는 것, 대신 중고거래로 멋진 레어템들을 쇼핑하는 프로 당근러라는 것, 좋은 안목을 갖고 있지만 존경할 만한 절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답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저보다 훨씬 부자인 톱스타인데 말이죠. 언론에도 공개된 적 있는 그의 멋진 하객룩이 중고거래템인 것을 보고, 다가올 저녁 모임을 위해 시몬로샤 재킷 신상을 직구한 제가 얼마나 초라해졌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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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잘한 중고거래’로 옷장에서 하나씩 들고 나온 전자 기기들과 라이딩 재킷들, 슈프림 점퍼, 아디다스 X 발렌시아가 콜라보 스니커스의 공통점은 소수의 소비자를 타겟으로 한 상품이거나 한정판이라는 거예요. 이런 상품일수록 충동구매가 많고, 죄책감에 새상품을 중고거래로 내놓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시몬로샤 재킷의 당근행을 진지하게 고려 중).
명수 씨는 종종 ‘바른생활 사나이’ 유재석 씨와 비교됩니다. 유 씨가 겸손함, 예의바름, 결벽적 자기관리로 국민 스타가 됐다면, 명수 씨는 정반대의 특징을 통해 자기 캐릭터를 만들었죠. 호시탐탐 정상을 노려보지만 비호감과 허술함으로 ‘쩜오’에 만족해야 하는, 본질이 ‘B급’인 개그맨입니다. 그런데 어떤 스캔들도 없고, 어떤 사회적 이슈와도 거리를 두어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의 안티도 없는 유재석 씨를 명수 씨가 슬쩍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요. 만장일치 찬사 받는 1등보다 하기 싫은 건 파도 타기하듯 넘어버리고, 불의한 상황에는 “싫다!”고 외치고,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공감을 표현하는 ‘바다의 사나이(명수 씨의 당근 아이디)’가 더 인간적이고 더 생생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젠가 파출소 앞에서 명수 씨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즐겁답니다. 당근을 들고, 싱글싱글 웃는 저를, 오토바이 헬멧을 쓴 명수 씨가 잔뜩 수상쩍은 눈빛으로 노려보겠지요. 하하.
@madame_carrot 당근, 고양이, 글쓰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