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러만, 한국 문화 주제로 개인전 “단오 자료-사진 보며 이미지 상상 이청준 소설 ‘축제’도 읽었다”
독일 출신 작가 소피 폰 헬러만이 그린 ‘탈춤’.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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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연인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드리겠다고 했던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한국인에게 슬픔과 한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미술가 소피 폰 헬러만이 본 진달래꽃은 살짝 다르다.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과 떠나려는 찰나. 그사이에 피어난 희고 가느다란 꽃이 진달래꽃이다.
독일 출신 작가 소피 폰 헬러만이 그린 ‘단오’. 스페이스K 제공
헬러만은 캔버스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제소(gesso·석고 가루)를 칠하는 등의 바탕 작업을 생략하고, 천 위에 바로 빠른 붓질로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런 감각을 살려 작가가 한국 전시를 위해 선택한 큰 주제는 ‘축제’와 ‘단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액운을 쫓아내고 한 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헬러만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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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러만이 한국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건 미술관의 폭 80m, 높이 9m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벽화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전시장 모양을 활용해 작가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펼쳐 놓았다. 정면에 가장 크게 보이는 공간에는 거센 폭풍과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대비시켰다. 오른쪽 2층 공간으로 이어지는 창엔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전통 단오제에서 마을의 산에 올라가 나무에 치장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산행’도 인상적이다. 오방색 깃발이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낀 하늘 속 무지개와 연결되는 장면이 담겼다. 커다란 자연 풍경 속에 배치된 캔버스 속 사람들은 대자연의 변덕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하지만 그 안에서 기원하고, 축복하고, 기념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간사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7월 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