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버럭’에 트럼프 당선 가능성 보고 중단 김 여사 눈치 보느라 실무자끼리도 입닫아 문제 눈감았던 핵관들 권력 누리고 모른 척 후보 과포장은 불고지죄 놓고 따지고 싶다
김승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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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10조에 불고지죄(不告知罪)라는 게 있다. 주위 사람이 반국가단체에 가입했거나, 북한 인사를 몰래 만난 사실 등을 알면서도 당국에 신고(고지)하지 않았을 때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양심의 자유를 해친다는 문제를 지닌 탓에 오래전부터 사문화됐다.
대통령들의 거듭된 실패를 지켜보면서 이 조항을 대통령의 최측근에게는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후보 잘못에 입 다물었다고 법적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책임은 묻자는 뜻이다. 대선 후보가 지닌 자질 부족과 내적 허점을 뻔히 알면서 그런 게 없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든 죄, 대통령 측근으로 권세를 누리면서 바로 그런 문제가 촉발한 국정 일탈에 침묵한 죄가 해당한다. 국민 앞에 이실직고야 할 수 없더라도, 내부적으론 개선책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젠 비밀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역정(逆情)과 배우자 국정개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버럭은 정확한 보고를 어렵게 만들었고, 오판이 종종 발생했다. 가령, 윤 전 대통령은 트럼프 승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바이든 후보 교체설이 나온 즈음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보고됐다. 그때 대통령은 ‘말이 되느냐’며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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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의 국정개입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참모들에게서 생각의 자유를 빼앗아갔다. 용산 대통령실에는 요즘 신문에 등장하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조카가 심어놓은 행정관 A 씨 같은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했다고 한다. 정무와 홍보 라인 실무자들은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꼭 개선해야 하지만, 여사가 불편해할 주제는 논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발언이 여사에게 보고된다고 믿었다. 오해 살 만한 생각은 꺼내지 않았다”는 내부자의 말이 뼈아프다.
지금까지 만난 역대 대통령실 참모들은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도 잘되고, 종국엔 자신의 장래도 잘 풀린다고 믿는 이들이다.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비슷했다. 그러자면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이런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으니 용산은 활발한 국정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 시절이 더 심각했을 뿐 사정은 과거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의 대면보고 기피로 상징되는 불통이나,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같은 외골수 경제정책은 국정에 난맥을 낳았다. 최측근들은 미래의 대통령이 갖고 있던 소통의지 부족이나, 이념 경도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거 국면에서 국민 앞에 ‘불고지’했다. 유권자는 더 정확하게 알고 투표할 권리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3년 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을 썼다. 양의 머리를 좌판에 올려놓고 팔았지만, 실제론 개고기였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때 정직하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으로 들린다. 대선 당시 이 의원은 윤 후보의 버럭 기질과 부인의 사사건건 개입을 알고 있었을까. 실상을 더 속속들이 알았던 것은 윤핵관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윤 후보를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랬던 윤핵관들은 탄핵과 파면을 거치며 구두 사과만 했을 뿐 여전히 정치의 전면에 서 있다. 또 진보 정부가 5년 만에 보수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심판을 받았던 문 정부 시절의 최측근들도 비슷하다. 국정 오류를 인정한 적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약진 탓에 위축됐을 뿐 여전히 재기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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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권자들은 번번이 후보의 기획된 모습을 믿었다가 절망하곤 했다. 측근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며 빠져나간다. 아무도 묻고 따지지도 않으니, 측근 정치인들은 거리낌 없이 후보를 포장해 선거를 치르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