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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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한미 재무장관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만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에 ‘면담’을 요청했더니 미국이 콕 집어 ‘통상 의제’를 제안했다고 한다. 재무장관 회담 핵심 의제가 관세가 된 것은 이례적이다.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기관총처럼 쏘아대던 관세전쟁이 산업 정책에서 환율 및 금융 정책으로 확장됐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관세전 핵심 참모 역할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에게 넘어갔다. 그의 행보를 보면 향후 관세 협상 전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파운드화 무너뜨린 젊은 베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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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와 돈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헤지펀드 출신 베선트 장관의 오랜 장기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가 무너진 유명한 ‘블랙 웬즈데이’ 뒤에도 그가 있었다. 영국이 유럽과 환율을 연동하자 전설적 투자자 조지 소로스와 젊은 베선트는 파운드화 급락에 베팅했다. 영국 금융시스템의 약점을 꿰뚫어본 예측은 정확했고, 영국은 금융위기 직전까지 갔다. 베선트는 2010년대에도 일본 엔화 하락에 베팅해 큰돈을 벌기도 했다.
상대국 금융 시스템의 약점을 파고드는 베선트가 전면에 나서자 시장은 ‘제2의 플라자 합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1985년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유도한 환율 협정이다. 40여 년 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 스티븐 미런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 내놓은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 보고서도 달러 약세로 무역적자를 줄이자는 것이 골자다. 고율 관세를 앞세워 각국을 협상장으로 부르고, 협상에서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대신 군사 동맹국에 초장기 국채를 강매해 기축통화 지위는 유지하겠다는 제2의 플라자 합의와 같은 내용이다.
제2의 플라자 합의 나오나
보고서대로 실제 ‘막가파식 관세쇼’ 이후 각국이 미국 협상 테이블로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 섬뜩하다. 협상장에는 환율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선트가 있다. 그는 미국과 공동 환율 목표를 가지고 있는 국가에 안보 우산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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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버티는 가운데 한국에 안보 우산을 지렛대로 한 원화 절상 압박이 커진다면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격 경쟁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내려가는데, 원화 가치만 크게 오르면 수출 시장에서 ‘초초저가’ 중국산과 경쟁해야 한다. 다른 수출 경쟁국의 협상 결과에 따라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관세, 환율, 안보가 총망라된 복잡한 전쟁 속 협상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레이 달리오 같은 월가 거물들이 “세계 경제-정치 질서의 중대한 변화”라고 한 경고를 곱씹으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