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NOW] 편안함-실용성 앞세워 패션계 주도… 낙낙한 셔츠와 슬랙스, 재킷 주목 간결한 실루엣에 고급스러운 소재… 유행 넘어 세련된 일상룩으로 각광
매일 아침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출근룩처럼 익숙한 ‘대디코어(Daddycore)’가 올해 다시 한 번 패션의 정점에 섰다.
대디코어란 말 그대로 아버지 세대의 옷장에서 볼 법한 아이템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뜻한다. 낙낙한 셔츠와 슬랙스, 클래식한 재킷 등이 이를 대표하는 요소다. 핵심은 단연 편안함과 실용성. 패션계에 젠더리스 트렌드가 확산되며 좁고 타이트한 실루엣보다는 여유 있는 옷차림이 하나의 스타일 미학으로 자리 잡았고, 그 흐름 속에서 대디코어는 자연스럽게 주류로 급부상했다.
대디코어는 비교적 최근에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 뿌리는 깊고 탄탄하다. 원형은 1980, 90년대 전형적인 아버지의 일상복에서 비롯됐다. 본래 멋을 위한 옷이라기보다는 실용성을 우선시한 생활복에 가까웠다. 촌스럽지만 솔직한 스타일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담백하고 정제된 멋으로 느껴진다.
광고 로드중
포문을 연 건 2018년 봄여름(SS) 시즌 발렌시아가 컬렉션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프랑스 파리의 한적한 공원에서 쇼를 열고, 실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런웨이에 등장하는 ‘신박한’ 장면을 연출했다. 낡은 블레이저에 허리를 한껏 추켜세운 청바지, 형형색색의 바람막이 점퍼와 투박한 운동화까지, 패션에 무관심한 우리네 아버지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런웨이를 걷는 그들의 모습은 패션계에 또 한 번의 파격을 선사하며 대디코어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여유 있는 옷차림이 주목받으면서 ‘대디코어’ 룩을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가 늘고 있다. 생로랑은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를 내세워 우아한 방식으로 대디코어를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왼쪽 사진). 프라다는 셔츠와 슬랙스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요소를 강조했고(가운데 사진), 로에베는 슈트에 셔링과 슬릿 디테일을 더한 실루엣으로 위트를 더했다(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생로랑은 이번 시즌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대디코어를 해석했다. 고전적인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은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를 컬렉션 전반에 내세우며 무심한 듯 섬세한 아버지의 멋을 담아냈다. 로에베와 빅토리아 베컴은 슈트에 셔링과 슬릿 디테일을 더한 구조적인 실루엣으로 위트를 더했고,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베스트 슈트 룩으로 품격을 더한 피터 도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디코어의 본질인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요소를 강조한 프라다를 필두로, 신예 디자이너인 로리 윌리엄 도허티와 에밀리아 윅스테드는 여유로운 셔츠와 슬랙스를 통해 오피스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트렌드의 흐름에 동참했다. 이 외에도 폴로 셔츠 위에 셔츠를 레이어드하고 오버사이즈 트렌치코트를 툭 하니 걸쳐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가브리엘라 허스트, 고전적인 스커트 슈트 룩에 트렌치코트를 더해 노스탤지어를 지켜낸 스텔라 매카트니까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아버지’를 소환했다.
광고 로드중
안미은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