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이퍼나이프’ 주연 박은빈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오른쪽 사진)에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따뜻한 캐릭터와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 “이번 작품에서 그간 안 해본 표현과 표정을 해보게 돼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고 했다.
9일 마지막 7·8회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8부작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서 주인공 정세옥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33)은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시청자 반응이 다소 의외였다고 했다. 정세옥은 반(反)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닌 신경외과 의사. 생명을 살리는 칼을 들고도,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살인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온라인에선 “박은빈 눈빛이 진짜 돌았다”, “맑고 똘똘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독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담담했다. 그는 “촬영하는 내내 미쳐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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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옥에게 도덕이나 윤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충동은 있는데, 공감은 없는 사람이에요.”
박은빈은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햇살 같은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 덕에 팬들에겐 토끼의 방언인 ‘토깽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차갑고 냉혹한 얼굴을 꺼냈다.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안 해본 장르, 안 해본 역할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는 대본의 첫 장면을 읽고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주인공이 의사인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어요. 첫 장면 지문에 ‘암전(暗轉) 위로 헨델(1685~1759)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가 흐른다’고 적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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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옥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사람이에요. 자기 합리화가 심하고, 감정적으로 미숙하죠. 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모습도 있어요. 그게 흥미로웠어요.”
정세옥을 추락시키고도 성장하길 바라면서 희생을 자처하는 최덕희와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중심축. 시청자들은 이 관계를 ‘피폐 멜로’라고 부르지만, 그는 다르게 해석했다.
“사랑보단 애착이죠. 강한 애착. 그런 감정이 서로를 집어삼키는 게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어요.”
이날 박은빈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대본집을 들고 왔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장면을 직접 찾아본 뒤 답변했다. 이런 꼼꼼함이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스토브리그’(201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년) 등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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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제 심장을 뛰게 하는 직업이 없네요. 어렸을 땐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배우라는 선택이 저한테 맞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하.”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