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사건이 필수… 중대한 변화 기점으로 흐름 전개 주인공이 고난 겪으며 성장하면, 접하는 사람은 색다른 매력 느껴 나 자신도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역경 이겨내고 이야기 써 나가야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을 때, 흔히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특히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 속에선 실패와 고난의 대목이 나타나곤 한다. 주인공이 고난과 실패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매력을 느낀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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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노력이자, 한번뿐인 삶에서 주인공으로 거듭나려 하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타인의 인생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알맹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지나치게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진솔한 면이 있어야 매력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즉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에 이야기는 예술의 영역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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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건의 연속체를 의미합니다. 사건의 전개 양상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결정됩니다. 사건은 일차적으로 주체의 행위와 동작, 그리고 상태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누가 집으로 가는 행위, 밥을 먹는 동작, 밤에서 낮으로의 상태 변화 등은 사건이 될 수 있는 씨앗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사건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한 ‘행위와 동작 그리고 상태 변화’를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봄에 싹이 나는 일은 상태가 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기에 이야기할 만한 사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야기할 만한 사건은 중대한 변화를 말합니다. 봄에 싹이 나지 많고 겨울이 지속되는 중대한 기후 변화가 발생한다면 그 여파가 상당하기에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일생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일, 나라의 운명이 갈리는 일 등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녹아 있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은 이러한 중대한 변화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중대한 변화와 사건들
기존의 주어진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도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을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이 혁명이 근대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질서는 완벽하지 않고 구멍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건의 자리’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혁명도 프랑스 사회 질서의 모순된 지점에서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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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질서를 단순하게 수용하기만 하고 따르기만 한다면 이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중대한 변화 즉 사건은 기존의 질서와의 차이를 만듭니다. 남들과 다른 이야기란 곧 남들과 차이가 나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기존 질서의 구멍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매력을 느낍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숫자로 셈해지는 시스템이 균열을 일으킨 자리에서 네오라는 인물이 탄생하는 사건을 그렸습니다. 이 영화가 아직도 회자되는 까닭은 구멍에서 사건이 발생한 이야기를 인간이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운명의 한 페이지 속에서 선택한 이야기
중대한 변화란 주관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중대한 변화라고 판단하는 것은 개개인의 몫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봄에 싹이 트는 일은 그저 반복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 일일 수도 있지만, 죽을 고비에 처한 사람이 이를 보고 생의 의지를 느낀다면 이는 사건이자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옵니다. 또 이 영화에는 시스템의 균열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눈감고 시스템 내부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사건이 되느냐 마느냐는 한 개인의 선택의 몫이자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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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생에 한 번은 고난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권주 진주 대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