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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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법정에 선 남성 디오브라 레든(32)은 단기 26년에서 장기 6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1월 3일 폭행 미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가 판사석에 갑자기 달려들어 메리 케이 홀서스 판사(63)를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홀서스 판사는 다쳤고 그 옆에 있던 법정 경위도 머리 부상을 입었다. 라스베이거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레든은 사건 이후 교도소 관계자에게 자신이 판사를 죽이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든이 애초 기소됐던 죄목인 폭행 미수는 단기 19개월에서 장기 48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법정에서 판사를 때린 죄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10배 넘는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가 사법 시스템을 얼마나 두껍게 보호하고자 하는지, 이에 대한 위협은 얼마나 큰 범죄로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관’이라는 신분을 취득한 인간이 활자로 정리한 ‘법’에 따라 형벌을 내리고 집행하는 것이 지금 사법 제도의 본질이다. 법도, 법관도, 형벌도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와 약속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무리가 모인 어떤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이 약속을 불신하기로 작정한다면 한순간 사법 제도는 붕괴되고 법전은 휴지 조각이 되며 판사들은 성난 군중 가운데 벌거벗겨질 수 있다. 이성적인 국민이 암묵적으로 맺은 ‘최소한의 사회적 계약’이 이런 상황을 막아왔고 그 기반에서 번영과 발전과 사회의 존속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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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소돼 법정에 선 당사자들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17일 열린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먼저 사람들이 법원에 들어가 있어서 나도 평온하게 들어갔다. 그러니 강제로 문을 개방하지 않았다’, ‘경찰을 때리긴 했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몸으로 밀었지 때린 게 아니다’ 등의 말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중 정점은 “대통령에 관한 미안한 마음과 영장 발부에 대한 항의의 마음을 표시하려 담을 넘은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부서진 건 법원인데 도대체 왜 윤석열 대통령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2025년 1월 19일 서울에서 부서진 건 단순한 법원 건물이 아니다. 사회의 평온을 지켜온 사법 시스템은 늘 견고할 것이란 믿음과 안도감이다. 그것들은 깨졌고 이제 법원은 펜스와 방호 장비로 철갑을 두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다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이들에게 합당한 결과가 돌아가야 한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