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용촌동에 위치한 정뱅이마을은 지난해 7월 폭우로 마을이 침수된 이후 현재까지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은 흙으로 지어진 집이 침수된 이후 그대로 방치돼 있는 모습. 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겁부터 납니다. 아직도 집안 벽에는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12일 오전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오재월 씨(89)는 텃밭 보수작업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27가구가 살고 있는 정뱅이마을은 지난해 7월 폭우로 인근 제방이 무너져 마을이 물에 잠겼다. 당시 주민 36명이 고립돼 2층 집 옥상이나 산으로 긴급 대피했고 소방본부 보트를 타고 탈출했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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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부에는 기존 집을 허물고 새롭게 지은 주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집들은 수마가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벽에 금이 가있거나 흙으로 지어진 집은 그대로 방치 돼 있었다. 도로에는 아직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비닐하우스로 향하는 길은 움푹 패여 있거나 콘크리트가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지난 여름의 아픔을 기억하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주민 이모 씨는 “새벽 시간 순식간에 집 안까지 물이 찼는데, 그날 마을은 ‘바다’를 연상케 했다”며 “아직도 그날 겪었던 일이 꿈에 나와 잠을 못 잘 때가 있다. 사람이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전했다.
대전 서구 용촌동에 위치한 정뱅이마을은 지난해 7월 폭우로 마을이 침수됐다. 이 곳에서 비닐하우스 농업을 하고 있는 김환수 씨가 지난해 물이 찼던 높이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주민들은 마을 침수 원인을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보고 있다. 마을에서 1㎞가량 떨어진 거리에는 평촌일반산업단지가 조성 중인데, 마을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는 주장이다. 산업단지에 들어갈 공업 용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물줄기가 마을로 넘어오게 됐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은 수해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답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대전 서구청은 자연재해로 보고, 제방 개보수로 재발을 막겠다는 입장만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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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jh8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