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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소모품이야. 소모되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
―봉준호 ‘미키 17’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많은 은유를 담은 작품이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모품’에 대한 영화다. 그 키워드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에 있다.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가 어쩌다 지원한 직군의 이름이다. 끔찍한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니플하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던 미키는 이렇다 할 기술이 없어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그 직군에 지원한다. ‘소모품’이라는 뜻이 말해주듯 미키는 소모돼 버려지고 복제되는 일을 한다. 컴퓨터를 바꾸고 저장한 파일을 카피해 쓰듯 프린팅(복제) 기술로 재생된 미키의 몸에 기억이 주입된다. 미키의 실험쥐 같은 역할은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예를 들면 백신) 개발에 사용된다. 미키 17은 그렇게 16번 죽고 17번째 복제된 미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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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마셜에게서 트럼프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관세정책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를 보다 보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어떤 타자들도 소모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국가 간의 문제만일까. 정치나 노동의 영역에서도 타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시선은 늘 존재하니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