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출신 현대미술가 와엘 샤키 개인전 ‘와엘 샤키…’ 서울서 개최 ‘동굴’ 등 2000년대 초기작 선봬 “어릴때 사우디 메카서 종교 영향… 예술가로 타문화 겪은 경험 담아”
와엘 샤키가 20년 전 만든 작품 ‘동굴(암스테르담)’ 앞에 앉아 있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독일, 튀르키예 등 다양한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그는 모든 문화의 ‘더 나은 곳으로 향하려는 욕망’을 탐구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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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남성이 걸어 다니며 아랍어로 경전을 암송한다. 정장 차림의 남성을 카메라는 생중계하듯 기록한다. 남자가 읊는 내용은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동굴의 장’. 소셜미디어도 본격화되기 전인 2005년, 장을 보던 마트 고객들은 힐끔힐끔 곁눈질한다.
이 남성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 와엘 샤키의 20년 전 모습이다. 이집트 출신인 샤키는 카셀 도큐멘타, 샤르자 비엔날레,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전시했고,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수십 명이 등장하는 감각적인 음악극 ‘드라마 1882’는 베니스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긴 대기 줄을 만들었다.
샤키의 초기작을 공개하는 전시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이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개최됐다.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샤키는 “20년 전 작품 속 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질적 문화의 충돌이 만든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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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자랐는데, 예술가로 활동하며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여러 나라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았습니다.”
세 가지 버전이 있는 이 작품의 출발지는 튀르키예. 당시 튀르키예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려고 했고, 찬성 의견과 무슬림 세계에 남아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대립했다. 샤키는 아랍어를 모르는 대다수 튀르키예 국민들이 아랍어로 된 경전을 믿는 현상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엔 자신의 성장 경험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어릴 때부터 달달 외웠던 꾸란을 원테이크로 읊으며,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슈퍼마켓에서 걷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이질적 문화를 충돌시키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샤키는 점차 더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로 발전시켰다.
● 같지만 다른 목소리가 담긴 순환
‘알 아크사 공원’ 전시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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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복’의 테마는 지난달 23일 마무리된 대구미술관 전시에 선보였던 작품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과 연결된다. 샤키는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I’의 배경인 모하메드 무스타갑의 단편 소설 ‘Horsemen Adore Perfumes’ 속 이야기도 들려줬다.
“마을 지도자가 여왕과 결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여왕은 지도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져요. 마을 전체가 날뛰며 여왕을 죽이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고, 죽은 지도자의 형제가 여왕과 결혼하기로 해요. 마을은 환호하고 결혼식을 올리면 여왕은 또 남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집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죠.”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 순간.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닮은 이야기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바뀌면서 같지만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샤키는 인터뷰 초반 “20년 전 자화상 속 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막바지에 ‘2025년엔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 거 같냐’고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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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