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오전 9시 출근해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할 시간. 멍때릴 시간조차 없이 바쁜 날이 계속되면 체력 방전은 물론, 번아웃까지 올 수 있다. 끊임없이 돌아가던 뇌에 휴식을 줘야 한다. 바쁜 현대인에게 멍때리기가 점점 필수가 되어가면서 그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클래식한 불멍부터 물멍, 산멍, 소리멍, 그림멍, 식물멍 등 온갖 멍이 유행이다.
하지만 뇌에 휴식을 주고 생각을 멈추는 일은 쉽지 않다. 뇌는 하루 종일 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잠들면 렘수면을 통해 필요한 기억은 남기고 쓸모없는 기억은 편집한다. 심지어 멍때리는 순간에도 뇌는 일을 한다. 2001년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가 있음을 알아낸 후 해당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명명했다. 이후 여러 전문가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뇌가 초기화되고, 이를 통해 창의성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컴퓨터로 치면 잠깐 이용하지 않을 때 절전모드를 해놓으면 전력 낭비를 막고, 컴퓨터의 수명을 연장하며, 다시 작업 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속의 정신과 전문의 김세희 교수는 “엄밀히 말하면 뇌 전체를 끌 수는 없고, 뇌가 어떤 작업을 하게 만듦으로써 뇌의 다른 기능을 끌 수는 있다.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바쁜 현대인일수록 잠시 멍때리는 시간을 가지면 인지 기능이 회복되고 집중력이 좋아져 실수가 줄어든다. 또 신체적·심적으로 누적된 긴장이 완화되면서 피로도도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가만히 천장을 30분간 바라보는 멍때리기로 하루의 시작을 열었다.
광고 로드중
제대로 멍을 때리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이 관건이다. 김세희 교수는 “뇌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정보가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것, 나에게 큰 자극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가 없는 말끔한 벽이나 천장, 잔잔한 움직임이 계속되는 불꽃이나 강물, 형체가 튀지 않는 논·밭·산 등을 바라보는 식이다.
이때 형체가 있는 대상이더라도 자신을 괴롭히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른 생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멍때리기 대상이 된다. 이른바 좋아하는 예술품을 바라보는 그림멍, 유물멍의 원리다.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최근 박물관이 발간한 ‘유물멍’에서 “생각이 이리저리 일어날 때는 유물 앞에 가만히 있어보라”며 “앙증맞은 형태나 재치 있는 표현이 와닿아서든 어떤 기억을 불러와서든, 내 마음을 끄는 유물을 바라보다 보면 잡다하게 일어나는 생각이 잦아든다. 모닥불이나 숲,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고요해진다”고 밝혔다.
윤혜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