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말년에 그린 ‘수련’ 연작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미술관에서 3월 4일부터 열리는 ‘프루스트와 예술’전에 출품되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6∼1919년), 캔버스에 유채, 200X180cm. ⓒ Fondation Beyeler, Riehen/Basel, Beyeler Collection. 티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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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그림 그릴 준비를 마친 화가는 분주하게 8개의 캔버스를 오가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본 연못을 그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화가는 이런 식으로 연못의 모습을 30년 넘게 그려 무려 250점을 남겼습니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입니다.
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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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모네의 나이가 50세. 청년 시절엔 인상파 그림이 인정받지 못해 가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루앙 대성당’, ‘건초 더미’ 같은 작품이 호평을 받고 판매도 되면서 화가로서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였죠. 이런 시점에 모네가 시도한 것이 바로 수련 연작이었습니다.
모네는 이전에도 풍경화에서 성당이나 기차역처럼 같은 곳을 여러 차례 그리면서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련’ 연작에서 극적으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풍경을 구성하던 많은 요소를 과감히 지웠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성당이나 기차역을 그리면 건물이 놓인 땅, 맞닿은 하늘, 또 오고 가는 사람 등이 함께 묘사되고, 이에 따라 보는 사람은 ‘여기가 어디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련 그림에서는 사람도 하늘도 땅도 없고 오로지 물만 가득 차 있습니다.
수평선도 지평선도 없이, 연못 한가운데를 뚝 잘라 그린 것처럼 모네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어느 평론가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벽을 가득 채운 수련 연작을 보고 ‘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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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에 가만히 집중한다는 것
모네가 이렇게 배경을 제거한 덕분에 우리는 ‘수련’ 연작 앞에 서면 물의 표면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화가가 제시하는 대로 조용히, 오랜 시간을 들여 연못을 바라보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 위에 비친,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입니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연잎, 가느다란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드리운 버드나무, 물의 반대편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 별사탕처럼 흩뿌려진 꽃들과 불타오르는 노을까지. 모네가 사실상 연못을 그린다고 해놓고는, 주변에 비친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됩니다.
‘수련’ 연작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바로 이 풍경의 설계자가 모네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네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정원에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에 식물도 모두 직접 골라 심었습니다. 정원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정원사만 8명을 고용했을 정도로 모네는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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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예술가가 그림에서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대한 새로운 답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평론가 레몽 레가메는 “모네가 그림 속 나뭇잎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사람의 얼굴, 입은 옷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똑같다. 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똑같이 중요했다”고 1927년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데요.
그러니까 과거의 방식으로 연못을 그린다면 그 연못이 있는 배경, 둘러싼 풍경, 그것을 보는 사람 등 ‘연못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함께 배치했을 것입니다. 성당을 그릴 때 건축물이 제대로 보이게 하고, 기차역을 그릴 때 사람을 함께 그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수평선과 땅을 지워버린 연못 그림은 찰랑이는 물 표면이 주는 감각을 극대화하며 ‘사물의 형태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했죠.
여기다 30년 동안 이어진 ‘수련 그리기’를 통해 모네는 점차 불필요한 선들을 제거하고 연못의 풍경을 여러 붓 터치와 색점의 조합으로, 거의 추상화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데 이릅니다. 이런 모네의 말년 작품을 본 후대 화가들은 더 나아가 아예 그림 속에서 사물의 형태를 제거하고 감각만을 묘사한 ‘추상화’를 그리게 되죠.
다른 모든 것을 제거하고 한 가지에 오랫동안 가만히 집중하는 것. 때로는 그것이 결국은 내가 느끼는 수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모네의 수평선 없는 연못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