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활주로 부지에 암매장 발굴 유해 중 270명은 신원불명 올해 손자 등 채혈로 신원 밝혀 제주 “유전자 검사 적극 참여를”
2008년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 제주도는 제주공항에서 총 388구의 희생자 유해를 발굴한 뒤 유가족 채혈을 통한 신원 확인에 나서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광고 로드중
‘시커먼 아스팔트 활주로 밑바닥/반백 년 전/까닭도 모르게 생매장되면서 한 번 죽고/땅이 파헤쳐지면서 이래저래 헤갈라져 두 번 죽고/활주로가 뒤덮이면서 세 번 죽고/…육중한 몸뚱어리로 짓이길 때마다 다시 죽고/그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는 뼈소리 들린다/빠직 빠직 빠지지지직…’(김수열 ‘정뜨르 비행장’ 중)
연 3000만 명 가까이 이용하는 제주국제공항(옛 정뜨르 비행장)은 제주의 관문이자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설렌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는 곳이다. 제주 관광의 상징으로 꼽히는 제주국제공항이지만, 70여 년 전 정뜨르 비행장일 때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제주 4·3사건 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와 예비검속 등으로 800여 명이 학살돼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60년 만에 드러난 참상
정뜨르 비행장의 비극은 수많은 유족과 목격자에 의해 전해졌지만, 서슬 퍼런 군사정권과 국가의 최고급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유해 발굴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랜 세월 유족들은 사망 일시와 장소, 시신 수습 여부 등을 전혀 알지 못해 생일날 제사를 지내거나 시신도 없는 헛무덤을 만들어 부모 형제를 기다렸다.
광고 로드중
제주도는 제주국제공항을 비롯해 화북천, 표선면 가시리, 안덕면 동광리 등 제주 곳곳에서 417구의 4·3 희생자 유해를 발굴했다. 현재 유가족 채혈을 통한 DNA 감식으로 총 147명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 가족을 기다리는 270명의 영혼
올해 4·3 유족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방계가족의 채혈을 통해 유해의 신원 확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18일 제주도에 따르면 2007년과 2008년 정뜨르 비행장 부지에서 각각 발굴한 유해 2구의 신원이 이달 확인됐다.
2007년 발굴된 유해는 제주시 한림면 저지리 출신 김희숙 씨(당시 27세)로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에 휘말려 섯알오름에 끌려갔다가 제주공항 부지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고 로드중
두 희생자의 신원 확인은 유가족의 적극적인 유전자 검사 참여 덕분이었다. 김 씨는 손자의 채혈을 통해, 강 씨는 조카의 채혈로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제주도는 24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김 씨와 강 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를 개최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유족들의 유전자 정보 확보를 위해 전국적인 홍보를 시행함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채혈 참여를 독려해 더 많은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며 “또한 도외 지역인 대전 골령골 학살터와 경산 코발트 광산, 전주 황방산 일대에 암매장된 유해 가운데 4·3 희생자도 포함됐을 것으로 판단해 유전자 감식 및 대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