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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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바이든-날리면’ 논란 때 실은 대통령실 내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론이 제기됐다고 한다. 경위가 어떻든 부적절한 표현에는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때 사과 문안도 검토됐지만 묵살됐다는 게 당시 대통령실 인사의 얘기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윤 대통령 발언의 OOO은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면”이고 우리 국회를 향해 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내부에서 사과론이 나온 건 설사 국회라 해도 야당에 비속어를 쓴 셈이니 잘못이라는 상식적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는커녕 책임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
진실 흐리고 거짓 강변하며 남 탓
윤 대통령이 사과했다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잘못을 덮으려는 의도에서인지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주장을 강변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에 빠뜨리고 문제 제기 자체가 동맹 훼손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진영 대결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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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바이든-날리면’의 공식이 놀라운 정도로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여러 관련자의 진술로 증명된 계엄의 실체를 교묘하게 흐리는 주장으로 사실관계를 흔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슨 지시를 했는지는 슬며시 감춘다. 그 혼란이 다른 사람의 거짓 증언 때문이라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진영 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시키는 식이다.
“실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달 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복수의 진술이 있고 계엄군이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간 멀쩡한 사실에도 애초 국회 해제 의결을 염두에 둔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주장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하 탓, 야당 공작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집권 내내 누적된 퇴행의 결과
즉, 윤 대통령의 지금 모습은 갑자기 불쑥 나온 게 아니라 ‘바이든-날리면’에서 시작돼 집권 내내 누적된 퇴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 논리와도 닮았다. 언론이 백악관의 거짓말에 문제를 제기하자 백악관이 거짓말이 아니라 언론이 얘기하지 않는 대안적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한 데서 탄생한 궤변 말이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윤 대통령 출근길 도어스테핑 중단으로 이어졌다. 당장의 잘못을 모면하려 사실관계를 뭉갠 윤 대통령은 언론 비판에 귀를 닫기 시작했다. 그로 말미암은 독선이 계엄의 토양이 됐다는 점에서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계엄이라는 파국으로 끝난 퇴행의 시작이다. 퇴행의 끝에서 윤 대통령은 또다시 스스로 자초한 처지를 벗어나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화적 계엄’이라는 형용모순의 거짓으로 ‘대안적 사실’을 쌓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믿고 분노를 폭력으로 발산하는 극렬 지지층에 쾌재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퇴행의 대가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얼마나 클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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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