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르 샤힌 바이오엔테크 CEO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임상을 넘어 연구, 그리고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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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그는 자신만의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자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2001년 설립한 가니메드 파마슈티컬스로, 이곳에서 항체 치료제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6년 이 회사를 매각하는 데 성공했고, 그 성과와 연구 역량을 발판으로 2008년 바이오엔테크를 공동 창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내인 의사 겸 연구자 외즐렘 튀레치 박사를 비롯해 비슷한 열정을 지닌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었다.
바이오엔테크는 창업 당시부터 mRNA 기술을 암 치료에 접목하겠다는 혁신적 접근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당시 DNA 연구에 더 집중하고 있었고, mRNA는 그 불안정성 때문에 의약품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샤힌 연구팀은 mRNA의 낮은 안정성과 짧은 단백질 발현 지속 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했고, 나노입자 전달 시스템 개발 등 꾸준한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2013년에는 mRNA 분야의 선구자인 카탈린 카리코를 영입해 염기서열 변형을 통해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초기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mRNA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바이오엔테크는 업계 일부를 제외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상업적 실현성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다.
혁신으로 이어진 문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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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이오엔테크 창업 초기 시절, ‘mRNA 플랫폼으로 암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은 대부분 ‘무모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샤힌은 암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늘 품었다. 그에게 맞춤형 면역치료는 언젠가 반드시 현실화될 수 있는 꿈이었고,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이를 백신 형태로 세상에 먼저 선보이는 계기가 됐다. 말 그대로 ‘의과학자의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이 만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혁신을 만들어 낸 셈이다.
흥미로운 일화로, 샤힌은 기업의 주가가 폭등한 뒤에도 여전히 자전거로 출퇴근했다고 한다. 큰 계약을 앞두고도 낡은 카디건을 그대로 걸치고 나타나 “정말 백신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의심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소박한 모습 뒤에는 확고한 과학적 신념과 ‘결국 연구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연구실에서의 발견이 환자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실험 데이터를 어떻게 창업과 연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단기 수익보다 혁신 기술에 집중
바이오엔테크는 철저하게 의학자 출신 창업가의 철학을 이어 받아 연구 중심의 경영 전략을 추구해왔다. 샤힌은 단기 수익보다는 혁신 기술의 확보와 임상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초기 투자자들에게도 긴 호흡의 연구개발이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학계와 산업계의 가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2010년 독일 마인츠대와 함께 트론(TRON·Translational Oncology) 연구소를 설립했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연구소는 대학 연구자와 바이오엔테크 연구원이 함께 신기술을 탐색하는 ‘번역 연구(Translational Research)’ 플랫폼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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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창업의 시너지 기대
한국 대학의 인기 전공 순위를 보면 대부분 의대가 상위를 차지한다. 이는 제한된 경쟁 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으려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부를 창출하는 창업가들이 적어질 수 있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샤힌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의사들이 의학·과학적 역량을 적극 확장한다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신약 개발이나 혁신적 치료법을 충분히 선보일 수 있음을 그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의대에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창업가가 배출된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까. 게다가 연구 현장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막대한 자본과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인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사명감과 보람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샤힌의 여정은 ‘의학’과 ‘창업’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안정적인 임상 현장에 안주하지 않고, 과학적 도전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이라는 무대에 뛰어든 그의 결단은 전 세계인의 건강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의사들이 임상, 연구, 창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K의료테크’ 분야를 선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환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개원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다양한 과학적 연구와 실험, 그리고 스타트업을 통해 국내외 무대를 아우르며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은 세계를 향해 더 큰 꿈을 꾸고, 투자자 및 스타트업 생태계는 의사들의 창업을 적극 보완해주며 개인도 국가도 부유해지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으면 한다. 샤힌이 걸어온 길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